무채색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별 다른 기술이 없는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겨울은 사진 찍기에 그리 좋은 계절은 아니어서 봄이 더 기다려진다. 즐거운 취미 생활을 위해 그간 한구석에 방치했던 카메라와 렌즈를 챙기는 손길이 흥겹다.
근래에는 올드 수동 렌즈만을 사용하다 보니, 시기별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고 전문 수리점을 찾기에는 너무 멀고 번거로운 탓에 가벼운 수리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나씩 경험이 쌓이고 보니 사진 찍는 취미에서 카메라나 렌즈를 분해/수리하는 취미가 되어버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대부분의 카메라나 렌즈 관리에서 가장 빈번한 것은 작동 상태를 점검하고 렌즈의 경우 광학계의 상태 점검 정도인데, 적절하게 습도를 관리하고 각 기능을 한 번씩 작동해보고 조리개와 포커스 링을 조작해 주는 것으로도 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적인 렌즈들이 있는데, 조금 방치해두면 포커싱 링이나 조리개 링의 조작이 너무 뻑뻑해서 수동 조작감이 아주 나빠진다던가, 조리개 등에 유막이 생기거나 더 방치하면 조리개에 유막이 고착되어 조리개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렌즈에는 러시아(구 소비에트 연방)나 동구권(구 동독 등)에서 제작된 1960년대 이후 렌즈에서 자주 보이는데, 주원인은 렌즈 제조에 사용된 질 낮은 윤활유(그리스) 탓인 경우가 많다. 기계 장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윤활유가 아주 효과적이지만, 렌즈의 광학부는 윤활유 등 유분의 오염에 매우 취약하고 작은 운동량으로 정밀하게 작동하여야 하는 부위에 헬리코이드 등에 사용되는 고점도 윤활유가 흘러들어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더구나 오래된 윤활유가 굳거나 장기간 작동하지 않아 고착되면 헬리코이드 조차 조작하기 곤란해지기도 한다.
수동 렌즈는 포커싱을 위해 헬리코이드 장치가 사용되는데 헬리코이드의 윤활유는 부드러운 조작감과 헬리코이드 나사산 간격의 미세한 유격에 윤활유를 이용하여 미세한 흔들림을 방지할 목적으로 '고점도'의 윤활유가 사용된다. 따라서 헬리코이드의 윤활유를 모두 제거하면 가벼운 조작감을 얻을 수 있지만, 나사산의 유격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윤활유를 보충해주는 것이 좋다. 보통 헬리코이드에는 실리콘 그리스 계열의 윤활유가 사용되는데 고점도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조작감과 다른 부위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이번에 분해하는 렌즈는 러시아에서 생산된 쥬피터 Jupiter -12 렌즈인데, contax rf (Kiev) 마운트이며 시리얼 번호로 볼 때 1968년 제작된 듯하다. Carl Zeiss Biogon 35mm를 복제한 렌즈로 가성비가 무척 뛰어나지만 흔하지 않은 마운트 방식과 렌즈의 사출부(후옥)가 카메라 내부로 길게 돌출한 형태 때문에 적절하게 활용할 카메라를 찾지 못해 사용량이 적었다. 50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서인지 포커싱 링이 너무 뻑뻑해서 분해하고 수리해 보았다. 러시아 렌즈들은 칼 자이스의 렌즈를 카피한 유형이 상당수 있고, 주피터-12 렌즈의 광학적 성능과 만듦새도 비교적 좋다. 하지만, 대체로 러시안 렌즈들은 생산과 러시아 식의 개량이 이루어질수록 광학 성능과 빌드 품질이 조악 해지는 면이 있다.
수리 과정에 남겨둔 사진으로 수리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헬리코이드 부분의 윤활유가 굳어 상태가 몹시 좋지않아서 보자마자 닦아내느라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광학계 부분으로 조리개 작동부인데 위쪽으로 흘러든 헬리코이드 윤활유가 굳어서 상태가 좋지 않다. 과도하게 바른 윤활유가 렌즈 내부 이곳저곳에 들어붙어서 조작감을 나쁘게 하고 있다.
굳은 윤활유 제거가 쉽지 않은 편인데 알코올이나 이소프로필렌, 에틸렌, 나프타(지포 라이터 기름) 등 유기용매를 이용하여 깨끗이 닦아내자. 아래 사진은 모두 닦아낸 직후이며, 주피터-12의 외양과 다르게 Kiev mount의 렌즈의 구조가 꽤 간명하다.
기존의 질 낮고 오래되어 굳어버린 윤활유를 모두 제거하고 '실리콘 그리스'를 다시 바르고 헬리코이드를 다시 결합하여 상태를 확인한다. 과도하게 그리스를 바르면 다른 부위를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적정량을 도포하자. 그리고 조리개 작동 부위 등에는 구리스 등이 흘러들어 가 조리개 날에 유막 등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비교적 간단한 수리에 속하는데 포커싱 수동 조작감과 조리개 조작감은 거의 최악에서 우수함으로 바뀌었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으로 진행하고 헬리코이드 윤활유 교체를 마무리한다.
헬리코이드 보수 등에 사용되는 윤활유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으므로 아래 링크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