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 블로그에 렌즈의 광학 구조니 광학 성능이니 장황하게 떠들어 왔지만, 사실 즐겨 사용하는 렌즈는 현재의 기술 수준이나 일반적인 상용 렌즈가 갖추어야할 스펙에서는 중국산 저가 렌즈에도 비할바 못되고, 수차가 가득한, 그리고 흐른 세월 탓에 작은 흠집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올드 수동 렌즈다.
렌즈뿐만 아니라 카메라도 이제 10년이 훌쩍 지난 X-pro1를 종종 쓰고,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신형이라 해도 5년이 훌쩍 지난 한물간 카메라들 뿐이다. 사실, 디지털 카메라는 이전 필름을 쓰던 기계식 또는 아날로그 카메라와 달리 매년마다 향상된 성능의 제품이 출시되어 금방 구형이 되고 쉽게 잊힌다. 수십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멋스러운 올드 렌즈에 감탄하다가도 수년 사이에 더 이상 효용이 없는 것처럼 다루어지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 생각하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은 물체나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신기술의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세상에서 오래된 것이 더 낫다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고, 여전히 한물간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는 일방적인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노노 재팬의 기치 아래 새로운 일제 카메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 허술하고 보잘것없는 취미 사진과 영상에 큰 불편이나 어려움을 야기하지 않고, 그리 불만스럽지 않은 탓이 크다.
오늘은 아련한 추억 속의 봄날의 정취를 즐기고 싶어서 캐논 C 하프 카메라의 50mm 렌즈를 M 마운트로 개조한 렌즈를 가지고 나갔는데, 주변부가 줌 버스터 (Zoom burst) 사진처럼 일그러지고 화질은 극악하다. 하지만, 별다른 보정 없이도 필름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경험한 50mm 단렌즈 중 가장 짧은 길이라서 카메라에 장착하면 단정한 맛은 있지만, 하프 카메라용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무계획?의 무리한 M 마운트로의 개조 탓에 조리개 뭉치를 통채 제거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항상 최대 개방 f2.8에 고정되어 버린, 어딘가 부족하고 중요 요소가 결핍된 불완전한 올드 렌즈이지만, 이 또한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고 나쁜 렌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뒤섞인 모습이 우리 사는 모습 같다. (그렇다고 효용에서는 결코 좋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봄을 맞은 화창한 산책길에는 지난 주말에 그나마 남아있던 벚꽃마저 다 지고 이제는 완연한 봄의 신록이 펼쳐져 있다. 이 즈음의 시간은 정말 순간처럼 여겨져서 아쉽다. 누구처럼 사사로운 기억 앞에 겸손해지지는 않겠지만, 비록 '상대적인 시간'이라도 '시간'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Canon SD 50mm f/2.8 (Fujifilm X-pro1)
35mm 풀프레임 카메라 (A7 r2)와 만드는 이런 저화질의 아련한 느낌 또한, 마냥 나쁘지 않고 올드렌즈는 이런 묘한 매력이 있다.
Canon SD 50mm f/2.8 (Sony Alpha7 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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