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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s of the world/Canon

캐논 FD 렌즈에 대하여 - 2부, "1960 년부터 시작된 카메라 산업의 변화 그리고 캐논"/ Canon FD Lenses _ Part 2, "Changes in the camera industry starting in 1960"

Notice 얄팍한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전편에 이어 수다를 이어가자. 먼저 전편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편을 읽으면 그나마 없던 두서라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싶다. 아래 링크의 전편을 참조하시길 권한다. 그리고 몇몇 사실에 근거하여 개인적인 추측과 망상이 뒤섞인 수다라는 사실을 먼저 밝혀둔다.

 

 

▶ 1960년을 전후 한 카메라 시장에서 변화에 대한 사적인 망상 - 독일과 일본 카메라 제조사 희비의 엇갈림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카메라 대중화의 시대(가장 큰 주요 시장은 북미 시장)에 늘어난 일반인의 카메라 수요에 대응하여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일본 카메라와 광학 제품은 꽤 인기를 누렸다. 즉, 전문 사진가 또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값비싼 카메라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문화생활의 품격을 높여주는 기기로 거듭났는데, 가격과 성능에서 균형 잡힌 가성비의 카메라 (일명 똑딱이 등으로 불리는 콤팩트 카메라) 제품 마켓이 폭발적으로 성장이 이 새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생각한다.

 

독일 카메라는 전문 사진가나 고가의 카메라 장비에 대해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부유한 중산층 이상이 중심이었던 기성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여 명성이 높고, 이러한 독일산의 긍지와 명성을 이어가는 동시에 (제조/산업 기반이 파괴된 여러 악재 속에서) 독일 내에서 제조/생산을 고집했던 만큼 상대적으로 고품질/고성능의 입지 유지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라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새로운 소비 시장과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수요 니즈에 부합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지 싶다.

 

자국 내에서 치열한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인적 손실뿐만 아니라 독일 내의 산업 기반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던 독일은 광학 산업에서의 어려움도 매우 심각했으며, 무엇보다 독일 카메라/광학 제조의 근간이던 드레스덴이 완전히 파괴/전소 되었던 점이 향후 카메라 시장에서의 주도하는 경쟁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으로 인한 피해 운운하며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하는데, 독일은 드레스덴이 전소되며 집계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인명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를 핑계로 일본과 같은 행태를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전범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은 역사 인식에 대한 분명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할되었으며, 추가적인 전후 처리와 배상 문제 등으로 경제적 재건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독일이 부담하여야 할 배상은 미/소간의 견제와 냉전 체재의 시작으로 공식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지만, 소련의 주도하에 동독의 카메라와 광학 기기 제조 기술자와 생산을 위한 기기 설비와 원재료 등이 소련(현재의 우크라이나 아스널) 등으로 강제 이전되었다고 하며, 동독 지역 예나에서 이전하여 서독에 자리 잡은 (반쪽) 칼 자이스 또한 광학 연구 자료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 압수/몰수? 되었다고 알려졌다. 이에 비해 일본은 도쿄 대공습 등의 자국 영토에서 폭격(2차례의 원폭 포함) 외에는 상대적으로 산업 기반이 보존되었고 따라서 독일에 비해 전후 경제/산업 재건에 유리한 입장이었지 싶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의 6.25 전쟁 발발이 산업 재건의 호재로 작용하여, 전쟁에 참전한 UN군의 군수 물자 보급기지 역할을 일본이 담당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경제/산업 기반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기회(우리 민족의 비극이 일본에는 호재였다니 슬프다)로 작용하고 또한 향후 카메라 산업의 발전과 관련하여 주요한 성공 요인이었지 싶다. 이후,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탄력을 받은 일본은 국가 차원의 수출 전략으로 카메라와 소형 가전제품의 수출에 몰두하였고, 기존 독일산 카메라 복제를 통해 보급/염가 버전을 제작하며 제조기술과 광학기술에 값싼 숙련 노동력의 결합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카메라 사업 육성에 전 국가적 차원의 지원으로 매진했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이 시기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관을 통해 수출 공산품 품질 관리 시스템 등의 도입을 통해 자국산 카메라 제품에 품질 인증 제도 등을 시행하는 등 일본 산업계가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도 흔하다. 일본 카메라 산업의 성공 이면에 우리 민족 상잔과 분단인 전쟁이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매우 씁쓸하다. 

 

1945년 2월 13-15일간 연합국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전소되며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고 희생자 수는 집계조차 되지 못했다.

 

라이카/Leica 카메라의 전후 사정 또한 여기서 잠시 언급하면, 라이카의 주 생산 근거지는 베츨라(Wetzlar)였고 자이스 이콘의 주 생산 근거지인 드레스덴에 비해 전쟁으로 인한 인적 물적 손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서독 지역에 위치하였으므로, 이후 냉전시대의 영향으로 미국 주도의 유럽 부흥 정칙인 마샬플랜 등 경제 재건 지원의 수혜로 다시 카메라 제조업을 복구하는데 이점으로도 작용했지 싶다. 이에 비해 자이스 이콘은 매우 불운했는데, 자이스 이콘은 원래 태생부터 독일의 주요 카메라 제조사 네 곳이 합병한 아주 거대한 규모였고, 주로 카메라를 생산하던 곳은 독일의 동쪽 끝에 위치한 드레스덴이었다. 드레스덴은 독일 산업의 근간으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이후 소련의 영향 하에 그나마 남아있던 광학 기기 생산 설비와 원재료 그리고 기술자까지 소련의 아스널(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 등으로 강제 이송되었던 까닭에 독일 내의 광학 제조 기술은 한동안 복구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된다. 그 기다 카메라의 렌즈 부분을 담당하던 칼 자이스와 자이스 이콘은 동서독에 걸쳐 두 개로 존재하며 서로 지적/산업 재산권 분쟁으로 법정 소송 등이 진행되는 등 내외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카메라 사업에서 일본 제조사가 독일 제조사를 추월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단순히 일본 광학 기술의 눈부심 발전에서 답을 찾기보다는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독일 광학 산업 기반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이를 복구하는 것에도 많은 방해 요인이 있었으며, 이렇게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에, 60년대를 기점으로 카메라 대중화와 SLR 카메라 전성시대에 빠르게 시장과 기술을 선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렸던 일본 제조사들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의 전통의 자이스 이콘은 70년 초반에 파산하였고, 언제나 보수적인 전략으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던 라이카 또한 50년대 찬사 받은 M3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변화에 뒤처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SLR 카메라(Leica R 마운트) 시장에 급하게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으며, 카메라와 관련된 전자 기술의 부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4년 Wild Heerbrugg AG Switzerland가 지분의 51%를 인수하게 되며 흡수 합병되었으며, 전략적으로 라이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만 매진하는 전략으로 주류 카메라 시장과는 동떨어진 장인 정신의 라이카로 남게 되었지 싶다.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보이그랜더나 롤라이 또한 시기적인 차이는 있으나 대략적인 상황은 비슷비슷하다)

 

그 외에도 기존의 카메라 보다 진일보한 새로운 SLR 카메라의 유행/소비 시장 변화 또한 일본 제조사 입장에서는 매우 큰 호기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기존 소형의 렌즈 교환형 RF 카메라나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 등에서 독일(서독과 독일) 제조사(자이스 이콘, 라이카, 보이그랜더, 롤라이 등)들은 매우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고, 이 제품 시장에서 후발 일본 제조사들은 '카피캣' 또는 '짝퉁의 저가 카메라'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50년대 후반에 펜타프리즘과 퀵 미러 시스템으로 비로소 완성된 실용적인 SLR 카메라 시장에서 일본은 독일 제조사보다 앞서 전략적이고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을 앞세워 관련 기술의 선점 및 표준을 일본 중심으로 가지게 된 개기가 되었지 싶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후 일본산 카메라와 본격적인 전성기와 독일산 카메라와의 제품 경쟁력뿐만 아니라 광학 기술에서 골든 클로스가 일어난 것은 새로이 등장한 카메라 전자 관련 기술과 현대적인 광학 기술에서의 차이에 있었다고 하겠다. 먼저, 60년대 이후 카메라 전자 제어 기술의 중요도는 차츰 증가하였고, 무엇보다 자동 측광 정보를 바탕으로 카메라의 각종 설정값과 연동하는 기술이었는데, 기존의 셀레늄 광전지를 통한 보조적인 측광 기술 수준에 머물렀던 독일에 비해, 일본은 CDS 셀을 이용한 보다 진일보하고 정확한 자동 측광 기술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측광 모드 (평균, 가중, 중앙중점 측광) 기술로 발전시켰으며,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와 렌즈의 조리개 값 설정값을 연동하며 독일 카메라와의 기술적 격차를 크게 벌렸다. 그리고 광학 기술에 있어서도 칼 자이스나 라이카 등과 차별화되는 일본 광학 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이 시점이 바로 이번 수다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점이다. (수다의 도입부가 너무 길어져서 이걸 쓰다 보면 무엇에 대해 떠들려 했던지 잊어먹기 십상이다)

 

한 가지 첨언해두고 싶은 사항은 '광학 기술에서의 역전(골든 크로스)'이나 제품 경쟁력에서의 격차 등의 표현은 개별 제품의 광학적 성능의 고하를 의미하지 않는다. 가격과 편의성, 그리고 카메라 함께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 등등을 모두 포함한 포괄적인 가치 평가라고 해야 하지 싶다. 개별 렌즈의 광학 성능만 비교하면, 라이카 렌즈의 뛰어난 해상력과 선명한 대비에 비해 캐논 FD 렌즈는 이에 견주지 못하고 따라서 기술력에서의 역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시장에서의 판매량만 참고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답을 얻는데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 광학 기술에 대하여

 

두루뭉술하게 광학 기술이라고 퉁쳐서 언급했지만, 광학 기술이 포괄하는 영역은 꽤 넓어서 간단의 정의하거나 광학의 범위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연상되는 '고전(기하) 광학' 뿐만 아니라, 파동 광학, 나아가 빛과 물질에 의한 상호 작용에 대한 광범위한 학문이라 할 것이며, 세부적으로는 물리 광학, 양자 광학, 분광학 등 매우 다양하고 첨단 기술 분야도 있다. 근래에는 최첨단 관련 기술에서 소위 돈이 되는 분야로 광섬유나 레이저, 그리고 최근의 반도체 관련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널리 알려진 감광제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와 같이 반도체의 생산 공정에서도 회로도를 반도체에 투영하여 제조하는 광학 기술, 그리고 자율 주행 등과 관련된 각종 새로운 광학 기술 등이 관심을 끌기도 한다. 비단, 카메라나 망원경, 현미경 등에 그치지 않고 최첨단의 기술로 앞으로도 꽤 전도유망한 분야라고 생각하지만, 이 수다쟁이는 그런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일면식도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이 수다에서 광학 기술은 카메라와 관련된 일반적인 광학 기술에 관련해서 비전문적인 동시에 수박 겉핥기식의 아주 부실한 수다임을 먼저 밝혀둔다. 사실, 일반적인 광학 기술이라 했지만, 이 또한 비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마냥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의 포토레지스트

사실 카메라 등 상용 제품이든, 군사용 목적의 광학 장비이든, 천체 관측용 망원경 또는 관측용 인공위성 등에 쓰이는 고성능 광학 장치, 현미경 등의 미세한 물질을 확대하는 광학기기 등 모두를 통틀어 꽤 다양한 기술, 즉, 소재를 분류하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기술과 이런 소재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광학 설계 기술, 그 외 구동과 제어를 위한 각종 전자 제어 기술, 그리고 실제 제품화를 위한 내부 작동 설계와 각 소재에 대한 기술, 그리고 이를 생산/제조하는 단계에서의 기술 등등 카메라 렌즈 하나 만드는데 관련된 기술 또한 아주 많다. 세부적인 사항을 '퉁쳐서' 광학 설계 기술과 제조 기술(빌드 품질) 정도로 언급되는 것이 익숙하지 싶다.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복잡하지 않은 것이 없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주 신나는, 동시에 '고약한?' 세상이지 싶다. 

 

광학 기술과 관련하여 광학 소재와 관련한 내용 또한 핵심적인 기술에 해당해서 이를 자세히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또한 두서없는 수다를 만들어서 엉뚱한 이야기를 잔뜩 쏟아 낼 수밖에 없을 듯하니, 이 부분은 간략히 언급만 하고 추후 다른 수다에서 자세히 다루는 것이 낫겠다. 

 

 

▶ Canon FD에서의 광학 기술 - 안정적인 광학 소재 기술과 신소재 기술 

 

일본의 카메라와 광학 산업에서 60~70년대의 성장은 광학 소재 기술에서 괄목한 성과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 하겠다. 20세기 초중반의 독보적이었던 독일 광학 기술의 근간 또한 광물학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보다 선행된 광학 소재 기술의 경쟁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칼 자이스와 합작에 의해 만들어진 Schott/쇼트는 다양한 광학적 성질의 소재(종종 원석으로 불리는 광학 유리 등)를 개발/생산하였고, 근대 광학 소재의 표준이 되었으며 고품질의 광학 소재와 이를 기반으로 한 광학 설계 기술이 결합하여 칼 자이스와 자이스 이콘 카메라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었으며, 나아가 광학 기술 역사에 매우 큰 기여를 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이카 또한 이 광학 소재를 직접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설계와 제조하는 독자적인 기술이 현재까지 라이카 광학 기술 신뢰의 가장 큰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라이카의 광학 소재와 제품 설계는 아주 보수적이어서 확실하게 검증된 품질과 제조 방법을 답습하는 일명 장인 정신에 입각한 제조 철학이 지금의 믿고 쓰는 라이카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독일 광학 소재에 대한 신뢰와 가치는 아직도 최정점에 있어서 독일 광학 유리(대표적인 제품으로 B 270 glass)를 사용한 제품(렌즈와 필터 등 기타 광학 기기 액세서리 등등)이 여전히 프리미엄 제품으로 높은 명성과 신뢰를 받고 있다. 

 

흔히 광학 유리 광학 장치를 이루는 소재를 때때로 일본어 원문을 해석한 자료에서 '원석'이라고 그대로 따와서 일반적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광석/광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 의미는 광학 소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일정 처리 과정을 거친 광학 '원재료'/metrial 정도의 용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광학 소재 산업은 현재까지도 독일 광학 소재의 명성이나 신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에 버금가는 품질의 소재로 평가받는데, 50~60년대를 거치며 갖춰진 뛰어난 가성비의 안정적인 광학 소재의 공급이 일본 카메라 산업의 탄탄한 근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재 산업이 가장 대표적인 기초 과학의 산물이며, 광학 산업의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FL-F 300mm f/5.6

Canon FD 렌즈를 비롯한 일본 광학 제품은 50~60년대를 거치며 축적된 일본 광학 소재 기술이 기반으로, 한발 나아가 새로운 신소재를 사용하는 과감함도 보여주고 있는데, 뛰어난 광학 특성에도 (무른) 물리적 특성 탓에 광학 소재로 활용하기 어려웠던 형석(Fluorite) 이용한 인공 수정 형석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 수정 형석은 낮은 굴절률과 낮은 분산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광학적 특성으로 사용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는 일부의 장초점 렌즈(FL 마운트 FL-F300mm f5.6) FL-F500mm f / 5.6 등에 적용되었고 70년대 캐논의 광학 기술력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거론되는 진부함이 있고 일종의 기술력에 대한 홍보/광고 성격이 강해 보인다. FL-F 300mm f/5.6 렌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양 등에서는 사실 그리 뛰어날 것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학 소재의 개발과 새로운 시도, 근래 자주 언급되는 '혁신'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새로운 광학 소재에 대한 갈망이 흑역사로 남은 경우도 있는데, 희토류 원소인 산화 토륨을 용융하여 만든 광학 유리 사용 (비록 인체에 영향이 제한적인 미미한 수준이라 하더라도)으로 방사선이 검출되는 광학 기기(일명 방사능 또는 토륨 렌즈)가 70년대 초 중반에 상용 제품으로 만들어졌던 문제도 있었다. 캐논 FD 렌즈 중 일부 렌즈가 이에 포함된다. 인공 형석이 물리적 성격과 가공의 어려움 등으로 아주 드물게 사용되었던 것에 비해 토륨이 포함된 광학 소재는 고굴절률과 안정적인 광학 특성을 보여서 꽤 많은 렌즈에 활용되었다. 하지만, 방사선 검출과 시간이 지나면 황변 특성으로 색재현력 등에 문제가 크고, 방사선 검출에 대한 위험 등이 알려지면서 사용이 중단되었다.

 

Canon FD 24mm f/1.4 SSC Aspherical 비구면, 플로팅 매커니즘, 토륨 유리 사용으로 방사선 검출

  

 

▶ 카메라 광학 설계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 - 컴퓨터와 광선 추적 방식, 플로팅 광학 설계 그리고 줌 렌즈

 

FD 렌즈 등장 이전에는 독일 광학 기술에 의한 정형화된 설계의 산물을 충실히 재현하거나 이에 약간의 개량을 거친 파생/확장된 광학 설계가 일본 광학 설계였지 싶다. 설계 자체의 특허가 만료되어 이 설계식을 활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일명 상호, 상표, 브랜드에 해당하는 명칭은 라이선스 계약 없이 사용할 수 없지만, 광학 설계에서의 특허는 최장 20년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60년 대 무렵까지 일본 광학/카메라 제조사에게는 '카피캣'이라는 오명이 늘 붙어다녔다.

 

앞서 언급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누적된 독일 경제 전반의 문제로 새로운 광학 기술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던 반면, 캐논을 포함한 일본 카메라/광학 제조사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세계 카메라 시장(특히 북미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바탕으로 연구 개발에 투자하여 다시 성과를 올리고 이를 다시 제품에 적용하여 매출과 수익을 성장시키는 선순환 단계에 있었지 싶다.

 

70년대 광학 설계는 이전 한세대 전의 광학 설계와는 달리 여러 새로운 기술적 진보가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본격적인 컴퓨터(전자 계산)를 활용한 설계와 레이저 광선 등을 이용한 광학계 내의 광선의 이동 경로를 시각화하여 확인할 수 있는 '광선 추적 시스템' 기술 등을 활용하여 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며 정밀한 광학 설계가 가능하게 된 시기이지 싶다. (물론, 멀티 코팅 기술이나 기타 다양한 신기술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래에서 다시 다루자)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캐논을 '젊은 캐논' 또는 '도전자 캐논'이라 부르곤 하는데, 지금의 노련하지만 안정적인 수익과 판매고를 탐하는 캐논과는 사뭇 다른 젊은 혈기와 실험 정신이 느껴지곤 한다.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에 광학 설계는 기하 광학을 기반으로 수학적 계산과 이를 실제 테스트 등을 거치며 확인/보완하는 고전적인 방식이었으므로, 수학자의 재능과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광물학을 기초로 탄탄한 광학 소재 산업의 기반과 정보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몇몇 성공적인 광학식은 별도의 명칭과 함께 발명자의 이름도 따라붙었고, 특허를 출원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정형화되고 하나의 표준이자 성공 신화로 회자되는 광학식(프로타, 플라나, 트리플렛 등등)이 되었으며, (이 또한 마케팅 측면에서는 효과 만점의 홍보 전략이지 않았을까?) 이런 시기의 광학자는 '천재'로 우러러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학 설계를 기반으로 요소를 추가하는 등의 파생과 변형을 통해 성능 향상을 꾀하고 실제 상용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었다. 이 방식은 하나의 안정적인 광학 설계/구성을 토대로, 광학계 전체를 전후 이동의 포커싱 방식을 취한 단 렌즈(프라임 렌즈)를 만드는데 알맞은 방식이고 따라서 이 시기의 광학설계는 대부분 고정 초점 거리의 렌즈들 일색이다. (물론, 20세기 초반에 가변 초점거리 (일명 줌) 렌즈 설계도 발명되었지만, 다수의 광학요소를 사용해야 했으므로 광학적 성능에서 아쉬움이 있었고, 주로 소형 포맷의 시네마 카메라용 줌 렌즈 등에 제한적으로 활용되었다. 스틸 카메라용 줌 렌즈가 본격 등장은 TTL 기술과 관련이 깊고, SLR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이다)

 

'컴퓨터'(일종의 고성능 전자 계산기)를 활용한 광학 설계와 정밀기계 설계 기술은 광학 요소 중 일부 요소만을 임의로 따로 구동시키는 (복잡한 변화로 인해 이전에는 사람에 의한 수학적 계산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았던) 복잡한 광학 설계(일례로 '플로팅 시스템')를 가능하게 했다. 나아가 '가변 초점 거리 렌즈'(줌 렌즈)의 복잡한 '다군 줌' 광학 설계를 가능하게 했으며, 비구면 광학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광학 설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따라서 광학 설계는 이후 공학 기술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과적으로 제조사 중심의 생산 친화적인 광학 기술로의 변화가 시작된 지점이라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판타지의 천재 광학자의 시대가 저물고, 컴퓨터 등 첨단 장비를 통한 엔지니어링/ '공돌이'? 의 시대가 도래했다)

 

Canon FD 렌즈에는 플로팅 설계가 본격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근경과 원경에서 효과적으로 광학 수차를 제거/억제하여 전 영역에서 선명한 사진을 만드는데 일조했는데, 이 시기부터의 광학 설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인 광학'의 시작이라 생각하며, 최신의 렌즈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 시기의 몇몇 렌즈 광학 설계를 계승 발전하여 아직도 EF 렌즈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글이 너무 길어졌다. 멀티 코팅과 관련하여 FD 렌즈에서는 S.C, S.S.C 등으로 불리는 코팅이 등장했는데, 단순히 멀티 코팅의 성능 향상에 멈추지 않고 진일보한 측면이 있고, 본격적인 비구면 요소를 활용한 광학 설계 그리고 'k35 CINE Prime'과 관련한 흥미로운 지점도 있어서 또한 꽤 긴 이야기가 남았으므로 다음 편에서 이어서 다루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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