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이카에 대한 호의, 흔히 로망이라 표현하는 선망이나 동경의 마음이 그리 크지 않다. 빨간 라이카 마크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꽤 무덤덤한 편이다. 사실, 라이카의 진정한 매력을 잘 알지도 못한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부분 옛 기억 속에 친숙한 것인데, 금수저가 아니었던 나는 어린 시절이나 한창 혈기왕성하고 호기심 많던 시절에 라이카 카메라를 보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친구들과의 여행이라도 갈 때면 사진관에서 빌려주던 올림푸스 하프 프레임 자동 필름 카메라나 장롱 속에서 간혹 꺼내서 공 셔터를 날려보던 두꺼운 가죽 케이스에 감겨있던 일제 SLR 카메라, 졸업식에 가져온 카메라에 장착된 망원렌즈를 그대로 끼고 10미터 이상 떨어졌어야 사진 촬영이 가능했던 친구의 니콘 카메라, 그때는 아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 짓게 하는 해프닝의 카메라 등이 기억에 남고 감흥에 젖게 한다.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는 요즘도 나의 관심과 흥미는 일상의 담담한 날 그 속에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격정적이지만 한편으론 담담한 그저 평범한 순간'을 별 다른 꾸밈없이 담아보는 것이다. 이 결정적인 순간, 찰라는 무슨 역사적이거나, 기상천외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스냅 정도의 의미다. 사진에 대한 나의 로망은 그리 대단할 것 없고, 따라서 이를 촬영하는 카메라도 스냅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 정도면 RF든 SLR이든 똑딱이 P&S이든 만든 제조사가 어디이든 큰 차이 없고 잘 의식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의 차이도 이제는 무덤덤해지기도 한다. 순간/찰나를 기록하는 방식에서 두 유형은 내부 메커니즘의 기술적 차이는 크겠지만, 사실 찍는 입장에서는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인연이 없었던 '라이카'인데 카메라의 역사나 올드 수동 카메라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찾다보니 라이카와 마주치는 일이 잦아진다. 본의 아니게 필름 시대부터 이어진 카메라의 기나긴 여정을 뒤척이다 보면 RF 카메라의 대명사 격인 라이카를 다루지 않을 수 없고, 이종 장착한 다양한 렌즈를 사용하다 보면 라이카 M 마운트나 LTM의 RF 카메라의 교환용 렌즈들도 접하게 되며, 35mm 소형 카메라의 역사에서 라이츠의 렌즈와 라이카의 카메라 족적은 꽤 뚜렷하고 선명하다.
짐짓 무덤덤함으로 욕망을 억누르고 있지만, 견물생심이라! 실제로 접하게 되면 소유의 충만감과 무소유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번뇌에 휩싸일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아 자고로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멀리해야한다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래, RF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종종 라이카 카메라 사용하냐는 물음을 듣는데, 조금이라도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라이카는 꽤 이름값이 높고, 고급 RF 카메라의 대명사로 확고하게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카메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라이카의 이름을 선뜻 떠올리는 것을 보면 이는 라이카 홍보와 마케팅의 승리다. 직접 구매한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니 일반 사람들의 이런 인지도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그냥 기업의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더 큰 의미의 홍보나 광고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이카의 홍보 전략의 그림은 단순히 카메라 판매 이상의 거대한 밑그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라이카의 홍보 방법은 흥미롭다. 치밀한 전략 하에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홍보와 광고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서서히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라이카로 촬영했다는 그 멋들어지고 극적인 사진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각종 매체에서 접하면서 라이카 카메라와 라이츠 렌즈의 성능과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하는데, 이런 거 하나하나도 치밀한 홍보의 한 면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왜 그 사진들이 그렇게 '자주 그리고 쉽게' 눈에 띄는 걸까? 그런 '노출' 하나하나가 계획된 홍보와 광고의 큰 그림의 파편 하나가 아닐까.
종종 라이카는 다른 카메라에 있는 편의 기능 등이 없는 자사의 카메라에 대해서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는 좀 어려운 카메라"라고 소개하는데, 비슷한 의미의 다른 표현은 "숙련자가 아니면 사용하기에 불편한 카메라"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표현에서의 사소한 차이가 라이카는 '불편한 카메라'에서 '전문가가 쓰는 카메라'라는 인식으로 전환되는 효과를 누린다. 다른 브랜드나 제조사의 제품이었으면, 후자의 '불편한' 의미로 각인되어 나쁜 인상으로 남을텐데 말이다. 홍보의 세계나 이런 사람의 의식 또한 참 알 수 없고, 요지경이다. 느리고 불편하고 이제는 한물간? 그러나 과거의 향수나 명성, 브랜드, 수집 가치 등등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작한 감정과 심리가 뒤섞인 라이카가 아닐까 싶다.
일본의 카메라 제조국으로서의 위상 만큼이나 카메라 애호가 또한 매우 많은데, 이들의 라이카에 대한 사랑과 수집벽 또한 대단하다. 자이스 이콘, 라이카 등과 경쟁했던 일본의 카메라에 대해서는 자국의 제품이어서 그런지, 그들 부모 세대의 생활용품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 그런지, 라이카와 극명하게 비교되는 가치 평가는 때론 너무 각박/가혹해 보이기도 한다. 타국 카메라인 라이카나 자이스 이콘(칼 자이스)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부러움과 찬미 이면에 자국에서 만들어진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홀대하는 풍조가 원인인 듯도 하다. 일본 사회의 유럽에 대한 선망은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이 되고자 탈아입구- 脱亜入欧 ( だつあにゅうおう )를 부르짓던 일본 제국주의의 허튼짓과 만행의 연장선에서 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홍보나 광고, 마케팅은 비단 라이카만 행하는 것은 아니니 불만이나 기망의 얕은 속임수라는 느낌은 없다. 인지도와 명성, 브랜드 가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유지하는 것이 신기해 보일 뿐이다. 이를 홍보나 광고로 평가한 이유는 실제 제품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 또한 좋은 호감이나 선호를 가지는 것은 홍보와 광고, 마케팅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라이카의 전면에 장식되는 빨간 로고를 보면 막장 드라마에 점찍고 나타나서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처럼 보이던 그 여배우 설정을 연상시킨다. 빨간 로고가 달리면 사람들의 보는 눈빛과 평가, 그리고 소유욕이 확연히 달라지니 말이다.
라이카를 선호하지 않는/못하는 이유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가의 가격이 크지만 사소한 카메라 사용 습관과도 관련된 이유가 크다. 사진이 취미이고 카메라의 이것저것에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특정 기능이나 제품 모델, 카메라 유형, 제조사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편이며 그냥 일상의 가벼운 외출이나 동네로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목측식의 하프 프레임 카메라를 들고나갈 때도 있고, 지인의 사진 촬영을 부탁받는 경우에도 디지털카메라에 이종 장착용 어댑터를 끼우고 수동 렌즈만 끼우고 나가기도 한다. 차를 가지고 나가는 제법 먼 여행에선 카메라 여러 개와 렌즈를 이것저것 싣고 가기도 하지만 사진 몇 장 못 찍고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사진을 오롯이 취미의 범주에서만 즐기는 아마추어로서 누리는 방만함과 나태함이지만, 이런 자신에게 라이카는 부족한 사진술을 채워 줄 친절하고 자상한 사진기와는 거리가 멀고,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의 중심과 관심을 모두 카메라가 앗아가 버리는 최악의 순간을 두려워한 탓도 있다. 카메라는 주 피사체에게서 적당히 무시당하거나 존재감이 없어야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오고, 그런 스냅이 내 취향이기도 하다.
명품이라 불리는 사진기가 좋은 사진을 보장해주진 않듯이 사진에 오롯이 집중하기에는 라이카는 거추장스럽고 신경 써줘야할 부분이 너무 많다. 라이카는 구매보다 유지 관리가 더 귀찮고 힘들어 보인다. 카메라를 분해하고 간단한 청소나 고장 수리는 직접 하기 좋아하는 성격에도 맞지 않다. 평생 유지 보수를 해주는 카메라라고 장점을 이야기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 또한 만만찮다. 차라리 좋은 물건 넘쳐나는 세상에 길들여진 이라면 새로 사는 것이 더 취향에 맞을지도 모른다.
라이카의 외형은 단정하고 매력적이며 작동 메커니즘이 정밀하고 정치하지만 최고의 성능과 편의성을 제공하는 즉, 금전적 가치나 기타 제조사의 비슷한 제품과 비교할 때, 기대에 부응하는 성능을 보여주는 카메라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남고 그리 높은 평가를 하기엔 어렵다. 이를 라이카식의 홍보에서 보면, 초보들에게나 어울리는 기능은 생략되고 전문가에게 어울리는 기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감성이나 외적인 가치 등을 제외하고 엄밀하게 카메라 본체가 보여주는 사진기로써의 기계적, 기능적 퍼포먼스는 좋은 편이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성향은 쾌적한 작동을 보장하는 AF 렌즈들을 멀리하고 구닥다리 올드 수동 렌즈에 집착하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불편이나 사용의 난도 높음을 알면서도 새로운 도전 과제로 삼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라이카는 유독 마니아 기질 그리고 수집과 소유욕과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수집과 소유의 만족도가 꽤 커 보이는 이런 라이카는 사진을 찍는 도구로서의 카메라로 인식하는 사람과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관점의 차이라고 할까? 수집의 대상이 되는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기기 이상의 수집품과 소장품이 되는데, 라이카는 이에 잘 부합힌다. 서구권의 전후 경제 부흥기인 50~60년대 호황과 번영의 옛 기억과, 그 당시 가지고 싶었던 고가의 카메라었으며, 풍요로운 나날을 기록해주던 사진기이기도 했을 테니 그들이 느끼는 라이카 브랜드의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테다. 그 이후에 일본 카메라 제조사들의 약진으로 라이카의 희소성이 일정 유지된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브랜드의 카메라가 지금도 독특한 디지털 RF 카메라로 빨간 점을 이마에 찍고 사진가와 수집가를 유혹한다.
나는 카메라를 아무렇게나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실 소중히 다루는 편은 아니다. 카메라의 케이스 등도 직접 가죽을 기워 대충 만들고, 소프트 릴리스 버턴이나 후드 등의 액세서리는 싸고 저렴한 호환이 좋다.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거니와 부담 없는 적당함이 본연의 효용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왠지 재물에 지배당하는 속물성에 대한 사소한 저항이라도 하듯이 나는 카메라를 적당히 막 다룬다. 그렇다고 일부러 험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용도에 맞게 쓰이고 관리되는 것이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에게 라이카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돼지 목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니 때로는 진주 목걸이? 인지도 살짝 의심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진주 목걸이 보다는 차라리 실용적인 스카프나 가죽 넥 스트랩이 더 좋다. 진주 목걸이를 했다고 이쁘게 봐줄 사람도 없고, 진주 목걸이에 쏟아지는 관심이나 찬사도 그리 반갑지 않으며 진주 목걸이 하나로 멋있어지기엔 너무도 턱없이 부족하니 말이다.
Leitz에서 만든 렌즈는 그래도 카메라 보다는 관심이 있다. 물론 접근성은 라이카보다 더 멀게 느껴지고 실제 광학 성능에 비해 과하게 부풀려져 있는 가치 평가(사실 골동품은 현재 활용 가능한 성능만을 고려하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므로 골동품처럼 취급해야 한다면 인정해야겠지만,)에 선택은 왠지 호구 짓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쯤이라는 유혹에 간혹 흔들린다. 하지만 사용과 소유는 또 다른 문제이고, 물욕처럼 느껴지는 수집과 소유의 대상으로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가질수록 고민과 걱정이 많아지는 것을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정작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장비가 아니라 단출한 사진기 하나만 준비하고 욕심 없이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라이카나 라이츠의 렌즈에 악감정이나 선입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멀리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라이카 예찬론에 흠뻑 취한 사람들을 보면 조금 안스럽기도하고 동시에 간혹 배가 아프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다. 언제나 카메라에 얽힌 감상에서 자주 언급했지만,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기기 이상의 감성과 결합되어 있고. 그 감성의 연장선에서 보면 라이카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은 독특하고 조금 허세를 동반하는 로망과 자기만족 그리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기기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카메라 자체보다는 카메라가 남겨준 사진에 더 애착이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사진 찍는 도구로 좀 편하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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