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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 about photography and cameras/Vintage Lenses & digital Camera

<빈티지 렌즈와 디지털카메라의 이종결합 X> 최대 개방 조리개 f/값의 효용과 '급 나누기'의 민낯 / Using vintage lenses on digital cameras - Meaning of maximum open aperture value

 

Notice -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렌즈 선택에서 이것저것 고민하다 보면 항상 최대 조리개 값 성능이니 화질 그리고 그에 따른 구매 가격 차에서 망설이게 된다. 특히, 표준 렌즈에서 '점팔'과 '점사', '점이' 등 (등급을 나눈 듯) 차례로 제품 라인업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고, 자꾸 더 밝은 조리개 값 성능을 가진 비싼 렌즈가 얄팍한 주머니를 노린다. 이처럼 올드 수동 렌즈든 최신의 렌즈든 상관없이 구매 가격과 최대 개방 조리개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의미하는 '급 나누기'의 실과 허, 실질적인 차이, 그리고 합리적 선택에 대해서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

 

 

렌즈 교환형 카메라에서 밝은 최대 개방 조리개값이 가지는 광학적 특성과 장점은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고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언급할 수밖에 없으므로 잠시 미루어 두자.

 

 

먼저 표준 렌즈에서 밝은 렌즈들의 출시 시기에 따른 배경부터 수다를 시작하자. 대부분의 광학제조사들의  렌즈 설계 발전 과정에서  특히 표준 렌즈(다른 화각의 렌즈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겠지만)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은 f/1.8과 f/1.4, f/1.2의 순차적으로 출시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설계나 개발의 순서도 동일한 순서로 이루어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수다에서 말하고 싶은 주요 요점은 f/1.8이 f/1.4의 하위 버전 또는 저가 버전(염가판-다운그레이드)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f/1.4와 f/1.2의 관계에서도 성립하며, f/1.2와 f/0.95의 렌즈에서도 각각 성립한다. 즉, 각 렌즈들은 광학적 설계에 있어 모두 충실하게 설계/제작된 렌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표준 렌즈들의 광학 설계식의 기준은 f/1.8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원가 절감이나 스펙 나누기로 등장한 염가 또는 하위 버전의 산물이 아니다.

 

조리개 값 F/1.8과 f/1.4 ,f/1.2, f/0.95 각각 단계별로 조리개 값이 약 0.5 f- Stop 정도 차이 값이다.(사실, f/2와 f/1.4 그리고 f/1.4와 f/1이 정확하게 1 스탑 차이이며, f/1.4와 f/1.2는 1/3 f-stop 차이 정도다. 이해하기 쉽게 1/2 f-stop로 퉁쳤다) 그렇다면 이 렌즈들도 단계별 차등이 있는 다운그레이드 렌즈들일까? 단순히 최대 개방 조리개 값만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이는 옳을 수 있다. 제조사들은 한 때, 이런 밝은 렌즈를 출시하는 것을 자신들의 기술력의 징표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차등이 각각의 광학적 성능 즉, 렌즈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한 차등이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60년대 이후 표준 단렌즈와 밝은 망원렌즈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온 더블가우스 타입의 표준 렌즈에서 f/1.8 설계식은 가장 기본이 되는 광학 설계식이다. 이 f/1.8 광학 설계식을 기준으로 f/1.4 또는 그 이상의 밝은 렌즈들이 순차적으로 파생되어 설계/개발되었다. 이 기본이라는 의미가 조금 애매할 수 있는데, 전통적인 광학 요소의 배열/중합 등으로 만들어진 광학식에서 최대 개방 조리개 값에서 용인할 수 있는 성능-수차 감쇄-을 보여주는 표준 렌즈 정도 될 것이다. 물론 표준렌즈에서 f/1.8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시행착오가 있었으므로 그냥 손쉽게 얻어진 것 또한 아니다.

 

2017/01/13 - [사진과 카메라 이야기/Camera & Lens Structure] - <카메라와 렌즈의 구조 X V> F 값(조리개 수치) / About f-number (f-stop,f-ratio)

 

<카메라와 렌즈의 구조 X V> F 값(조리개 수치) / About f-number (f-stop,f-ratio)

Notice -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F 값에 대해 정확한 개념과 적절한 표시 방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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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F 50mm f/1.8
Canon EF 50mm f/1.4
Canon EF 50mm f/1.2 L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아닌 일반적인 사용빈도가 높은 그리고 광학적 성능도 안정적인 조리개 값에서의 광학적 성능(퍼포먼스) 차이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동일한 초점거리에 동일한 조리개 값이므로 심도 차이가 발생할 이유도 없다.

 

단지 f/1.8 렌즈를 기준으로 비교할 때 최대개방에서의 수차 감쇄 문제로 차이가 일부분 있을 수 있다. 즉, f/1.4나 f/1.2 등의 렌즈의 f/1.8 조리개에서 좀 더 좋은 광학 성능을 보여줄 여지는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결과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 차이는 미묘한 것이고 최대 개방의 화질은 렌즈의 광학적 성능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최근의 표준 f/1.2 렌즈에 특수 렌즈(비구면 요소 등)를 사용하고 있는데  광학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설계되는 렌즈에는 비구면 요소가 자주 쓰인다. 이는 마케팅에 이용되어 적절한 구실로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고급 렌즈임을 주장하는 급 나누기의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비구면 요소의 광학적 성능이나 가격, 그 효용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이런 비구면 요소의 적용 이유는 f/1.2로 대변되는 최대 개방 조리개 값에서의 수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에서 적용된 것이다. 물론, 다른 조리개 값에서도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사실 미미하다. 즉, 비구면 요소가 일정 이상 조여진 조리개 값에서 광학 성능 향상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일례로 최대 개방 값이 각각 다른 f/1.2와 f/1.8 렌즈의 공학 성능을 비교할 때, f/5.6이나 f/8 등의 조리개가 일정 조여진 상태에서 광학적 성능의 차이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2017/01/23 - [사진과 카메라 이야기/Camera & Lens Structure] - <카메라와 렌즈의 구조 X VIII> 조리개를 조이면 왜 화질이 좋아지는가 - 조리개 개구의 크기와 화질의 관계 / Aperture affect and the image quality

 

<카메라와 렌즈의 구조 X VIII> 조리개를 조이면 왜 화질이 좋아지는가 - 조리개 개구의 크기와 화질의 관계 / Aperture affect and the image quality

Notice -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카메라의 조리개를 조이면 일반적으로 화질이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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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조리개 값을 가지는 렌즈의 장점

 

- 셔터 스피드 확보와 고속 셔터의 사용

 

밝은 조리개의 장점은 빛이 부족한 저조도의 상황에서도 적절한 셔터스피드로 촬영이 가능하다. 이는 표준렌즈의 밝은 렌즈 설계와 출시가 기술력으로 대표되던 시기(즉, 지금의 이미지 센서 고화소 경쟁과 유사하다)의 산물이기도 하려니와 필름 카메라 시대에 촬상소자로서의 필름의 특수성 즉, 감도 선택에 있어서의 제한이 있던 시기에 유효한 기술 경쟁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결과물의 화질 확보를 위해 저감도의 필름을 선택해야하고 촬영 상황에 따라 저조도 상황에서 밝은 조리개 값의 렌즈는 셔터스피드 확보에 유리했고 아주 유용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포착할 때는 셔터 속도를 우선하여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 이미지 센서에서는 일정 고감도에서도 이미지 품질의 큰 문제가 없고 간편하게 또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사용자가 용인한 범위내의 감도 범위 내에서 이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면 사용자가 해당 감도를 직접적이고 간편하게 설정할 수 있으며 필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던 고감도의 사용도 가능하다. (물론 아주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원하는 경우에는 고감도에서의 노이즈 등의 문제로 사용이 부적절할 수 있다)

 

이전 필름 시대의 밝은 렌즈가 보여주던 밝은 조리개 값의 렌즈의 효용이 이제 그리 크지 않다. 조리개 한 스탑 차이는 감도 한 스탑의 차이에 불과하다. 최대개방을 활용한다는 전제하에  f/1.2 렌즈 대신  f/1.4 렌즈를 선택하고 감도를 800에서 1600으로 올리는 것으로 셔터 속보를 확보하는 데에는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 극단적인 밝은 상용 렌즈(f/0.95)의 출시는 광학업계의 기준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미 메이저 카메라 광학 제조사 일부는 60~70년대에 표준 렌즈에서 f0.95의 렌즈를 일반 소비자용으로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밝은 렌즈는 최대 조리개 값에서의 얕은 심도와 큰 구경, 무게, 그리고 과도한 가격 탓에 (장식장 선반 위에유리구슬처럼 보관하면 보기에는 아주 좋을 듯하다) 실제 촬영 활용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드림렌즈라는 등의 홍보 문구에 낚이지 말자) 특히 휴대성과 스냅 상황에 강점이 RF 카메라에 적용했을 때는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광학 설계와 제작 관련 기술력은 따로 입증할 의미가 없는 메이커에서 실제 활용도가 떨어지는 f/0.95 이상의 렌즈 출시는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 특히 AF 구동을 위한 조건에 큰 광학요소의 무게는 좋은 조건이 아니며, 얕은 심도와 무거운 구성요소는 AF와 조화시키기 부적절한 면도 있어보인다.

 

최근 렌즈 설계의 가장 주된 화두는 고화소(고해상력) 이미지 센서에 대응하는 고 해상력의 광학적 성능이며 이는 광학 수차의 감쇄를 기존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에서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자사의 기술력을 어필하고 싶거나 튀고 싶은 후발 광학제조사(주로 중국 제조사)들이 f/0.95의 밝은 렌즈를 종종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출시 제품이APS-C 규격으로 광학구성요소의 크기나 초점거리 등에서 이점이 작용한 것이다. 35mm 포맷의 f/0.95와는 설계 및 제조 기술력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수동 포커싱 렌즈에 그치는 점 등이 시사하는 바는 높은 기술력과는 격차가 있어 보인다)

 

 

캐논은 비교적 늦은 1946년에서야 비로소 자체 렌즈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뒤늦은 렌즈 제조 역사에 대하여 스스로 콤플렉스가 있었던지 최근의 후발 광학 제조사들이 그러하듯이 1950년대와 1960년대 밝은 렌즈를 출시하는데 열중한 듯하다. 1961, 캐논 RF 카메라(Canon 7) 장착용 교환렌즈 50mm f/0.95를 선보였는데 당시에는 출시된 사진용 렌즈로는 가장 밝은 조리개 값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리고 렌즈 이름을 '드림렌즈(Dream lens)'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 의미가 환상적인 렌즈라는 의미인지 얇은 심도 탓에 배경이 모조리 날아가 꿈처럼 몽롱하다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수집가들에게는 아주 구미에 맞는 대상(적당한 희소성과 차별성)인 탓에 과분한 가격에 거래된다.

 

Canon 50mm f/0.95

 

 

 

 

- 얕은 심도 표현

 

밝은 조리개 값의 렌즈는 아주 얕은 심도 표현이 가능하다. 얕은 피사계 심도는 사람 눈이 인식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시각적 표현에 유용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얕은 심도를 상회하는 극단적인 얕은 심도의 효용은 어떨까? 한쪽 눈에 포커싱을 맞추면 다른 쪽 눈의 포커싱이 흐려질 정도의 심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표준 렌즈에서 f/2나 f/1.8로 표현할 수 있는 배경 흐림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충분하다.

 

 

심도놀이의 실체는 무엇일까.

 

단순히 얕은 심도 표현이 가능한 장비를 자랑하고 싶은 심도 놀이가 아니라면, 일반적 의미에서 심도 놀이는 배경을 아웃포커싱을 통해 흐리게 표현함으로써 주 피사체를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응 유용한 방법이며 사진은 뺄셈이라는 명제처럼 배경을 아웃포커싱이라는 방법으로 빼버리는 것 또한 좋은 표현/연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 피사체를 강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하므로 좀 더 곰곰이 고민해 보자.

 

때때로 좋은 배경흐림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배경 흐림은 배경의 파사체가 형태의 윤곽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적절한 색감과 함께 부드럽게 뭉개지는 정도를 좋아한다.(이런 의미에서 지나친 보케나 회오리 형상의 배경 흐림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며 주 피사체로의 주목을 방해하므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배경 흐림은 주 피사체와 배경과의 거리나 공간 배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f/1.8로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는 심도 표현이 가능하다. 만약 그래도 부족한 배경 흐림이라면 주 피사체와 배경의 공간 배치의 변화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배경을 어느 정도 날려서 표현할 것인가는 촬영자 선택의 문제이지만, 여백으로 비어진 공간의 주 피사체보다는 적당한 현장감 있고 주 피사체와 관련있는 배경에서 훨씬 높은 주목도가 발생하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간략히... 요건만 말하면 너무 얕은 심도의 완전히 날아가버렸거나 형체조차 알 수 없게 뭉개져버린 아웃포커싱은 오히려 주 피사체의 주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도 놀이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은 링크로 대신하자.

2018/01/20 - [사진과 카메라 이야기/사진 그리고 한 걸음 더] - 초점 심도의 미학, 조리개는 얼마나 조여야 할까 - "심도 놀이에 대한 변명" / Proper aperture settings

 

초점 심도의 미학, 조리개는 얼마나 조여야 할까 - "심도 놀이에 대한 변명" / Proper aperture settings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듯한 ‘초점 호흡’(focus breathing)에 대한 수다를 전번 포스팅에서 다뤘으니 이번에는 흥미를 조금 유발할 수 있는 수다거리를 주제로 삼아보자. 사실, ‘미학’이라 이름 붙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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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빛망울(보케) 표현

 

화면에 넘실되는 커다랗고 둥근 빛망울을 표현하는데 얕은 심도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도뿐만 아니라 조리개의 모양, 잔여 수차에 의한 영향, 그리고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고 단순히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의 문제 외에 고려할 사항이 많으므로 별다른 언급은 생략한다.

 

 

최근의 이미지 후보정 기술(어도비의 포토샵이나 라이트 룸 등등)은 배경흐림 등의 표현에 있어서는 후보정의 자유도와 표현력이 아주 높다. 즉, 선명한 이미지를 흐릿하게 바꾸는 것은 간단한 조작만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그 역은 어렵고 불가능하다. 즉, 깊은 심도로 촬영한 이미지에서 배경 부분을 흐리게 하는 아웃포커싱은 후보정을 통해 가능하지만, 배경 흐림 된 부분을 선명하게 후보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얕은 심도표현의 효용은 사실 의심스럽다. 현대 광학의 많은 부분에서 고해상력을 요구하면서 심도의 배경 흐림 만큼은 참 관대하다. 그리고 얕은 심도의 마술 같은 효과에 대한 이미지는 카메라 또는 광학 제조사의 마케팅의 산물은 아닐까 싶다.

 

할수 있는데 안 한 것과 할 수 없어서 안 한 것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안 했다는 결과는 동일하고 그 차이는 그냥 마음의 위안을 위한 핑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밝은 조리개값을 위해 광학부의 매수가 증가하고, 각 요소의 구경도 증대하므로 증가된 무게는 빠른 AF 구동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큰 구경으로 인한 렌즈의 전체 크기 증가는 휴대성과 작은 카메라에 장착 밸런스에 좋지 않다.

 

 

렌즈 - 최대개방 조리개 값으로 급 나누기의 민낯

 

왜 우리는 이미 위에 언급한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또 인정함에도 50mm f/1.8은 왠지 없어 보이고 초보자용 같으며, 저가형의 성능이 낮은 단계 렌즈로 인식하게 되는 걸까.

 

이러한 인식을 만드는데 캐논의 공로?가 컸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까지 SLR 카메라에 표준 렌즈 그중에서도 가장 만들어진 렌즈는 50mm f/1.8 렌즈였다. 물론 f/1.4와 f/1.2 등도 존재하였고 가격도 저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f/1.8은 기본 장착(번들) 렌즈로서 부담 없는 가격에 준수한 성능의 렌즈로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변화의 조짐은 80년대를 거치며 나타나는데 AF 시스템의 등장과 이와 맞물려 기술적 한계에 부딛힌 nFD 마운트와 좀 더 대중적인 SLR 카메라 시장의 확대와 새로운 기술에 대응하기 위하여 캐논은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Canon EF 50mm f/1.8를 필두로 새로운 EOS 시스템 EF 마운트의 캐논이 야심 차게 변화를 시도하지만 당시 기존의 nFD 마운트를 버리고 호환되지 않는 EF 마운트를 채택하면서 그간 캐논 사용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도입된 EF 마운트 렌즈군이 기존 렌즈와 호환되지 않음으로 인한 자체 렌즈군의 부족 등의 문제로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이에 캐논은 새로운 EOS 시스템의 연착륙을 위해 보다 싸고 부담 없는 표준 번들 렌즈를 돌파구로 선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990년, Canon EF 50mm f/1.8 II 의 등장. 플라스틱 경통에 마운트조차 플라스틱이며 시끄러운 AF 구동 모터 소리가 거슬린다. 거리계 창도 없고 조리개 날은 5매에 불과하고 후드 장착 방법은 불편하며, 후드를 장착해도 싼 티가 난다. AF와 MF 전환 버튼이 있지만 MF 링은 렌즈의 끝에 얇은 테두리로 위태롭게 달려있고 조작감은 최악이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130g의 무게, 그나마 광학부가 유리이고 포커싱 시에 필터가 회전하지 않는다는 점에 고마워해야 했다. 물론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점은 커다란 장점이었을지 모른다.(출시가는 Canon EF 50mm f/1.8는 2,100엔, Canon EF 50mm f/1.8 II은 1,200엔) 하지만 이런 플라스틱의 조악한 외형과 노골적인 급 나누기 마케팅은 f/1.8 렌즈를 싸구려의 한 단계 낮은 등급의 렌즈 이미지로 만드는데 기여했음을 나는 믿는다. (Canon EF 50mm f/1.8 II의 광학적 성능은 나쁘지 않다, 캐논 카메라를 사용 안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렌즈 중 하나이기도 하다)

 

Canon EF 50mm f/1.8 II (1990)

 

 

캐논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Canon EF 50mm f/1.4를 보면 캐논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Canon EF 50mm f/1.4가 딱 중간 등급의 품질을 보여준다. 그나마 마운트는 금속이고, 거리계 창이 있으며, f/1.8에 비해서는 한단계 높고, f/1.2 렌즈에 비해서는 한 단계 낮은 등급의 USM 모터를 장착하고 있어, 그나마 점팔에 비해 조용하며 조리개 날은 8개로 만들어졌다. 출시가는 Canon EF 50mm f/1.8 II의 4배 수준인 4,900엔이었다.

 

 

Canon EF 50mm f/1.4(1993)

 

 

Canon EF 50mm f/1.2 L USM은 f/1.8의 15~6배 가격으로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내게 만들었다. 가격만 봐도 럭셔리하다는 걸 알겠는데 그걸 굳이 렌즈 명칭에도 럭셔리를 상징하는 'L'이라 박아놓았고 그것도 모잘라서 경통 테두리에 뚜렷하게 (금테 아닌) 붉은 테를 둘러놓았다. 가격과 고급진 이름과 외형을 봐서는 앞의 두 렌즈보다 최소 몇 배씩은 좋을 듯한데 광학 성능에서는 그리 좋은 평은 듣지 못했던 듯하다.(캐논 카메라 사용이 끝나고 난 이후에 출시된 렌즈라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출시가는 Canon EF 50mm f/1.4의 4배 수준인 185,000엔이었다.

 

Canon EF 50mm f/1.2 L USM (2007)

 

 

위에 나열한 각각의 렌즈들을 비교해 보자. 약 1/2 스탑 차이의 최대 조리개 값, 그리고 각각의 급이 다른 사양들, 그리고 각각 약 4배 차이의 가격. 물론 출시 시기에 따른 차이 등 소소한 요소를 감안해도, 이런 '급 나누기'가 행태에 대한 비판이 터무니없는 음모나 프로 불편러의 트집 잡기가 아니라는 것에는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급 나누기 행태는 렌즈뿐만 아니라 카메라에서도 효용이 높은 기능에 소소한 차이와 성능에 제한을 두고 가격의 차별하는 등, 이 바닥에서 누누이 보고 겪었는 바이기도 하다.

 

급 나누기와 치졸한 상술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 탓에 f/1.8은 저급하고 싸구려이며 초심자나 사용하는 렌즈로 전락하였다. 캐논의 이런 행태가 나는 밉다. 단순히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의 일면이라고 '장사 참 잘한다'라고 평하기엔 그 실망이 크다.

 

Canon EF 50mm f/1.8 II를 기존의 Canon EF 50mm f/1.8의 꼴로 남겨뒀더라면 지금처럼 극단적인 점팔의 이미지 하락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렌즈 뒤캡이 붙어 좀 길어 보이지만 광학 설계는 f/1.8 II와 동일하다. 최소한 최대 개방 값으로 급 나누기를 하더라도 다른 사양 특히 재질이나 조리개 날 수, 거리계 창, 수동 포커싱, 마운트의 재질 등에서는 이런 급 나누기의 장난 질은 없었어야 했다.

 

 

Canon EF 50mm f/1.8 (1987)

 

 

 

근래 Canon EF 50mm f/1.8 STM으로 그나마 마운트 재질은 금속 재질이 되었고 조리개 날은 7개(f/1.4의 8매를 넘어서지 않는 한도)가 되었으며 MF 포커스 링의 위치 또한 최악은 면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계 창은 없고 급 나누기의 행태는 여전해 보인다. 조리개 날 수를 2장 추가하고 마운트 부속 금속 대체,  MF 포커스 링의 위치를 조금 변동시키고 19,500 엔으로 출시하였다. 광학 구성은 동일한데 이전 모델보다 7,500엔 더 비싸며 인상률 162.5%에 해당한다.

 

솔직히 거리계 창을 만드는데 추가되는 제조 원가가 얼마나 될까?  아주 단순하고 기술적인 어려움도 전혀 없으며, 제조 비용에서도 그 차이는 정말 미약하다. 그런데도 이런 소비자를 위한 편의를 위한 장치 하나 선택하지 않는 캐논의 행태는 소비자를 '卒'로 보는 치졸한 급 나누기의 저급한 상술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오직 AF만으로 사용한다면 거리계 표시창은 별 효용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AF/MF 전환 스위치는 왜 달아놓았으며, 수동 포커싱 조작을 위한 링은 왜 만들어 둔 것일까.

 

 

Canon EF 50mm f/1.8 STM (2015)

 

 

 

 

 

한번 각인된 저품질의 이미지는 좀처럼 떨치기 어렵다. 서민의 소박하고 건전한 삶이 어느 날 모든 가치를 경제적 능력이나 돈으로 평가하는 배금주의에 쩔은 악다구니에 내몰려 볼품없는 하급 인생으로 매도당하는 현실과 겹치면서 순간 울컥했나 보다. 급 나누기가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자발적인 선택권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의 강요된 선택권에 불과하지 않을까?

 

 

수다의 논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억지를 부린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긴 수다를 통해 표하고 싶었던 것은 최대 개방 조리개 수치가 렌즈의 광학적 성능이나 급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즉, 상대적으로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낮은 렌즈가 동일한 조건(동일한 f 값)에서 반드시 더 좋은 광학적 성능을 보이는 뛰어난 렌즈인 것은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낮다고 해서 다운그레이드 등급의 허접한 광학 성능의 렌즈로 평가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기만에 가까운 급 나누기의 공공연한 행태가 안타까웠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조리개의 최대 개방의 값은 사람의 키에 비유하면 어떨까. 키가 큰 사람은 여러 장점이 있겠지만, 키 작은 사람에 비해 더 뛰어나거나 급이 높고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의 디지털 미러리스나 디지털카메라에 이종 교배하는 경우,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 1 스탑의 실효성은 이전 필름 카메라에서 차지하는 효용과 사뭇 다르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얼마든지 좋은 기술이 카메라에 내장되어 있다. 즐겨 인용하는 말이지만 '나쁜 렌즈는 없다'. 단지 사용자의 취향의 문제이고 활용의 문제이며, 어느 렌즈가 사용자와 표현 의도와 잘 부합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간혹 장비병으로 급 나누기 좋아하는 행태(오래전부터 보아와서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포기한 지 오래다)를 접하면 답답해 지곤 한다. 단지 제조사가 책정한 가격이나 겉으로 드러난 스펙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림 속의 떡보다는 지금 내 앞의 개떡이 더 좋다. 지금 손안에 있는 카메라와 렌즈가 '최고의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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