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귀를 기울이면/산들산들(日常茶飯事)

'감성 사진'에 대한 하찮은 불만과 풍경 사진의 어려움 / 2019년 8월

 

 

 

여름엔 덥다는 핑계로 하루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맴돌기만 한다. 창밖 풍경이 그럴듯해 보일 때면 유리창을 통해 비친 창 밖 풍경에 종종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이런 사진은 저급한 스스로의 미적 눈높이에도 미달해서 실망스럽다. 딱 부러지게 말하긴 어렵지만, 힘이 느껴지지 않고, 내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 만큼이나 흐릿한 느낌을 준다. 편광 필터를 사용해보고 이리저리 여러 시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데, 유리창으로 인한 영향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유리 한 장으로도 이럴 진데, 도시에 갇혀 살고 있으니, 평소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혼탁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게으른 아마추어 사진 애호가에게 풍경 사진은 참 어렵다. 첫째 나태함으로 멋진 풍경의 현장을 찾는 노력이 부족하고, 어쩌다 마주친 순간에도 대처할 준비가 부족해서 그냥 흘려 지나기 일수다. 작위적으로 연출된 듯한 극적 장면은 왠지 오글거려서 내키지 않다고 말하면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흔하디 흔한 풍경은 또 심심하게만 보여서 흥미를 끌지 못한다. 어쩌다 하늘이 멋스러울 때는 삐죽거리는 건물들이 장엄한 자연 풍경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저급한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사진첩에서 발견하는 도시의 멋진 풍경 사진들도 많던데, 풍경 사진은 부지런하고 모험심이 큰 탐험가들의 사진에서나 어울리는 것이지 게으른, 그 기다 불평만 늘어놓는 수다쟁이에겐 그림의 떡 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한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사그라드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탐험/모험의 도전 정신이 아닐까 싶다. 일상에서 조차 익숙한 곳만 맴도는 꼴이 쳇바퀴 속 다람쥐 꼴 같다. 일상과 현실에 안주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게으른 자신을 돌이켜 보면, 멋스러고 신박한 풍경 사진을 얻기 바라는 것은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는 헛된 마음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무겁다.

 

 

흔히 '감성 사진'이라 일컫는 얕은 심도의 사진의 실체는 '감정적인 격앙'이 만들어낸 부산물이 아닐까 싶다. 흥분 상태이거나 이성보다는 감정에 이끌릴 때에 사람의 동공은 확장하고 (흡사 사랑에 빠지면 동공이 팽창하고, 오직 사랑하는 대상만 보이는 그런 감정적 고조 상태 또한 유사한 상태가 아닐까) 감성적인 생각에 사로 잡히는 것이고, 유독 어두운 밤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감성적이 되는 것 또한 확장된 동공으로 얕은 심도로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이지 싶다.

 

감성 사진은 그런 감성(감수성)을 다수의 사람들과 공감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을지 모르지만, 좋은 사진이 목표로 하는 시각 정보를 통한 통찰(예리한 관찰력)이나 묵직한 주제 의식의 전달과 사뭇 거리가 있는, 즉, 소모성 또는 강한 휘발성의 감성에 호소하는 인스턴트 사진들에 불과한 것이라는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하지 않을까! 물론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특히, 상업적인 용도)가 더 많을 테고 사진의 쓰임이나 목적/장르에 따라 다를 것이고, 때로는 이성 따위는 날려버리고 감성에 푹 빠져 그간의 이성적 인간으로 살기 위해 발악?했던 삶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삶이 감성만으로 살기에는 만만찮고 때로는 냉철한 이성을 요하는 때도 많지 않던가!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면,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것도 멋진 삶이지만, 때로는 냉철하고 차가운 이성의 자세도 필요했던 것 같다. 문제는 언제나 감정에 치우쳐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정도지 싶다. 다가오는 가을은 또 왠지 감성 충만의 계절인데, 걱정이다!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