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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산들산들(日常茶飯事)

사진과 문자 / 2019. 06

 

사진 취미의 아마추어로서 이 즈음의 계절과 거리 풍경 그리고 이를 담은 사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채로운 색과 길어진 낮의 길이 탓에 감성적인 빛으로 물드는 저녁 무렵의 거리 모습도 사진으담기 더없이 좋다. 그리고 항상 오가는 익숙한 길, 무심코 지나치는 흔하디 흔한 일상의 모습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살짝살짝 뷰파이더로 엿보 새롭게 보이곤 한다.

 

사진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에서 보면 다시 새롭고 때로는 일상의 무심히 지나치던 그 흔한 풍경이 맞는지 묘한 이질감도 든다.

 

스스로 수다쟁이라 부를 만큼 이런저런 장황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좋아하지만, 사진에 제목을 붙이는 걸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이유야 '제목'이 필요할 정도의 대단한 이미지를 감당할 '깜냥'이 되지 못하고, 사진의 느낌을 몇 마디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사진의 시각적인 감흥을 굳이 촬영자라는 이유로 보는 사람의 감상을 제약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촬영한 대상이 의도하거나 연출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나 사건, 현상 등을 관찰/포착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 현상에 제목을 붙일 생각도 능력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궁리해서 연출한 즉,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라면 그 의도를 표하는 그럴 듯나 제목을 붙이는 것이 잘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하나의 완성된 사진/이미지에서 작가 또는 관찰자의 의도나 숨은 함의가 때로는 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진을 보는 저마다의 감흥이 중요하고 그런 다채로운 감흥의 폭이나 깊이가 더 사진을 온전히 즐기는데 더 적당하지 싶고, 작가의 의도나 목적, 촬영 전후의 숨은 이야기 등은 사실 하나의 참고하거나 부연된 요소의 하나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것이 전시되었던 웹상에 게시물로 누군가에게 보여진 사진이든 다른 이가 이를 본 순간부터 작가나 촬영자의 의도와 함의를 떠나 사진을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흥이 중요하지 촬영자가 붙인 주제나 제목, 부가된 설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특정 정보를 전달할 목적이거나, 상황을 설명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상의 스냅사진이면 더더구나 제목이나 구구절절한 설명은 변명같고 구차하며, 사진의 감상에도 마땅찮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서나, 관련된 정보를 더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사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 일례로 정보 전달 등이 우선하는 경가 아닐까 싶다. 사진 한장으로 전달하지 못한 감흥이나 작자의 의도를 제목이나 기타의 문자로 보충하여야 한다면, 이 또한 그리 성공적인 사진이라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사진마다 존재하겠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기호로써의 문자를 덧붙이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사진을 보는 사람의 저마다의 감흥이나 생각에 가이드라인을 붙여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관찰에 불가한 스냅사진이나 풍경 사진이라면 더더구나 그렇지 않을까. 간혹 전시회 등에서 본 그 무수한 '무제'의 사진의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듯도 하다.

 

제목을 덧붙여서 더 명확해지는 사진들이 물론 존재한다고 생각한. 영화 포스터나 광고/홍보물에는 부수적이고 의도한 정보 소개를 목적으로 하니 이는 익숙하고 잘 어울려서 이미지와 짧은 단문의 문장이 만드는 또 하나의 예술 장르처럼도 느껴진다. 캘리그래피 등으로 사진이 주인지 텍스터가 주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를 작품들도 있고, 촬영자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상황의 이미지에 붙는 제목은 일응 이를 시각화한 작가의 의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과 이를 설명하는 텍스터가 어색하지 않다. 연출되었다는 것 자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방점이 찍혀을 수밖에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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