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얄팍한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소비에트와 러시안 렌즈에 대한 나름의 소소한 분류와 소개 포스팅 그리고 몇몇 렌즈의 단순 사용기 준비하며 느낀 러시아 렌즈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남겨두려 한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이 느낌도 잊히고 지금과는 달라져 있겠지만, 어쩌면 지금 서투르고 섣부른 초보의 감상이 잘못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더 자유로워서 좀 더 본질에 다가설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의 대부분은 감상과 일부분의 망상으로 이루어질 것이 당연하고, 무분별한 주장과 논리 비약, 사실관계의 혼돈은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근거 없는 감상 따위를 펙트로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먼저 구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광학기술 수준은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 각종 국/내외 전문 리뷰 또는 일반 사용자의 사용기 등을 보면 "꽤 좋다" 또는 "기대 이상"이라는 리뷰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듯하다. 기댓값이 낮다 보니 "어 이거 의외인데..." 이런 반응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낮은 인지도와 구입할 때의 저렴한 거래 가격에서 기인하는 낮은 기대치 등이 원인일 테고, 독일 광학의 카피/복사본으로 시작한 러시아 광학의 태생적 한계와 사회주의 경제구조에서 공산품의 허섭한 품질을 쉽게 떠올린 탓일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전으로 인한 전리품?이 아니었으면 '근본 없는' 러시아 광학의 시시한 카메라 정도로 취급받았을 개연성이 높은 것 또한 타당하다. 그나마 독일 광학의 카피/복사본이 어쩌면 인지도나 기술적 신뢰도를 더 높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 공연히 알려져 있듯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은 승전국으로서 패전국 독일에 전쟁 배상의 대가(정확하게는 Contax II, Contax III의 생산기술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후의 전쟁 배상에 있어 공식적으로 체결되었거나 알려진 사실은 없다) 일부분으로 칼 자이스의 본거지였던 Jena의 카메라와 관련한 기술, 인력, 설비, 반제품과 부품 등 카메라 생산을 위한 일체를 구 소련으로 이전하여 생산 기지화(현재의 우크라이나 Kiev 등)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기술력과 인지도 모두를 가지고 있던 독일의 칼 자이스와 라이카 카메라 및 렌즈의 완전한 복사품을 생산/제조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에게 보급하였다. 물론 독자적인 브랜드(Zorki, Fed, kiev, industar, jupiter, mir, helios 등등)를 사용한 것은 당초 기술도 확보하고 브랜드도 확보하려는 욕심이었는지는 모르나, 어쩌면 현재 라이카나 자이스로서는 자신의 이름값의 명예를 지키는 것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독일 광학의 주요 거점으로는 '드레스덴'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자이스 이콘의 콘탁스 카메라 생산 공장도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될 때까지 드레스덴에 있었다) 하지만 이는 카메라와 광학제품의 생산을 위한 기반시설을 의미하고 광학 연구와 설계의 중심은 자이스의 출발점이자 본사가 위치하고 있었던 'Jena'였다. ' 칼 자이스'의 시작은 1846년 '예나'에 칼자이스 공방을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독일 최고의 산업도시로서 드레스덴은 항공산업과 광학산업의 중심으로 다양한 광학회사들의 생산기반 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드레스덴의 산업기반 시설 상당부분이 파괴되었고 종전 후 승전한 연합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었으며, 광학은 당시 군사 기술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로 미군 주도로 예나의 칼 자이스 본사에 있던 주요 연구 인적자원 80여명과 각종 기술 도면 등을 서독 지역(오버코헨)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소련 점령하의 동독지역 예나는 또 한 번 시련을 겪게 되는데, 주요 인력 200여 명과 각종 기반시설을 소련 내(현 우크라이나 아스널)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소련의 예나 - 털기(약탈)?는 우크라이나 아스널에 '키예프'라는 광학 연구와 생산의 새로운 거점을 만드려고 시도였다. 독일(동독) 내의 명망 높았던 많은 광학 회사는 카메라 사업 재건이라는 명분 하에 통폐합의 과정을 거쳐 거대 국영기업체(VEB)로 재편하였고, 초창기 생산 제품의 대부분은 소련으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에 의해 강제로 분열된 자이스 이콘과 칼 자이스는 이후, 칼 자이스 브랜드의 상표권과 관련하여 세계 각국에서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이후 지루한 법정 공방 후에 1971년 양측 합의로 서구권 국가에서는 오버코헨의 칼 자이스가, 동구권 국가에서는 예나의 칼 자이스가 각각 '칼 자이스' 명칭을 사용하기로 합의하였고, 다른 제3세계에서는 모두 '칼 자이스'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이후 1991년 두 개의 독일이 통합하였 듯이 두 개의 칼 자이스는 다시 하나의 재단으로 통합되었다.
덧 붙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독일광학'의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굳건함과 저력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그 결과로 말미암은 막대한 배상과 동/서의 분단으로 동독지역의 '예나" 서독지역 '오버코헨'과 소련의 아스널로 3분 되었고, 그간의 광학기술과 제조기술, 전문 인력과 그동안의 연구성과인 설계도 등을 모두 강탈당하여 상실(미군에 의해 '예나'에서 80여 명의 핵심 연구인력과 함께 강탈당한 설계도 또한 다시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하였지만, 오랜 역사와 기술력에 기인한 저력으로 재정비하여 카메라와 광학기기의 제조와 생산을 이어가고, 지속적인 광학적 연구 통해 보다 진보한 광학기기 개발과 제조 성과는 진정한 독일 광학의 저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 이미지 출처 및 참고 [Weekly BIZ] [Story] 독일 광학기기 업체 '칼 자이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21/2011102101179.html
소련 & 러시아 광학의 기본은 '칼 자이스' 즉 독일의 광학기술이고, 이는 당시의 카메라와 관련한 가장 진일보한 기술 중 하나였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카메라와 렌즈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였다. 하지만 이런 기술력이 러시아 광학에게는 동시에 스스로 재생산에만 만족하게 하는 결과를 나은 원인이 된 건 아닐까? 결과적으로 초기의 구 소련 카메라와 광학기술은 칼 자이스 광학기술의 원형 또는 외전을 그대로 유지하게 한 의미도 있으나 이후 새로운 기술로 발전에 있어서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당시 독일로부터 입수한 광학기술의 수준은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이 요구하는 수준을 충분히 만족시켰고 당 시점의 높은 만족도는 새로운 도전과 개발의 필요성과 의욕을 저하시키는데 일조했지 싶다. '국립광학연구소' 등을 통해 일부 광학식의 개선 및 개발이 있었으나, 제품으로 실제 생산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지 않고, 구 소련 광학기술의 주 목표는 기존의 광학기술과 기존 제품의 검증된 상용기술의 도입, 편리한 조작을 위한 개선 등에 치우친 느낌이다.
공산/사회주의 경제의 특징에서 접근해 볼 수도 있다. 구 소련은 시장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로 자본주의의 시장 경쟁체제와 대변되는 경제구조였다. 국가는 일정 수준의 공산품을 계획적으로 제조하고 이를 인민에게 적절히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보편적 평등을 최우선 하여 동질의 공산품을 제조/생산하여 공급하고, 군사적 또는 특수한 목적을 제외한 특별한 제품을 만드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사회구조였다. 이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 전혀 다른 경제체제이다. 물론, 내부적으로 일정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광학 제품의 주요 생산기지가 키예프, 모스크바 근교의 KMZ, 아스날 등으로 분리되어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서방의 시장에서의 (실질은 기업의 생사를 건 살벌한) 경쟁으로 인한 효율과 승자 독식에 의한 규모의 경제의 파급력에는 비할 바 아니었고,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가 맞물려 급격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는 한편으로 냉전시대 동서 장벽은 이후 소련의 광학 기술, 상품성의 하락과 격차를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스스로를 허약하게 하는 창살로 작용하였다 할 것이다.
서구권 경제체제, 특히 카메라 시장에서 벌어졌던 전통의 강자 독일 광학/카메라 회사들과 신흥 강자 일본 광학/카메라 회사들의 경쟁과 시장 주도권 쟁탈을 위한 기술적 승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위한 실험적 도전, 가격 경쟁과 다양한 수요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 등이 맞물려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시장을 주도한 것과 사뭇 비교된다. 이런 소비자와 시장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경쟁력의 차이가 광학적 성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 확보를 통한 상품성과 새로운 시도와 보다 개선된 신제품 등, 우리의 구매욕과 소유욕을 자극하는 상품으로써 볼 때, 러시안 렌즈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매력을 잃고 있었다. 기존의 성공을 답습하거나 마지못해 세상의 변화에 한발 뒤처져서 따라가는 수동적인 변화로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적 위기와 맞물려 시장에서 도태되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른 두 정치/사회 구조하에서 점차 일반 공산품의 경쟁력에 있어서의 격차가 발생했고, 냉전시대가 길어질 수록 이런 격차는 누적/심화되었음은 당연하다.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오랫동안 소련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그리고 그 탓에 낮은 경쟁력의 열등제가 되어버린 제품을 생산하는 잃어버린 구 소련의 생산시설은 폐업되거나, 생산라인의 대부분이 중단되고 일부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아는 시대에 뒤쳐지고 시장에서 상품성이 없는 낙후한 동구권의 카메라와 렌즈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80년대의 쇠락기를 거치며 90년대 몰락한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 정책은 실패로 귀결되었음을 역사로 남았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실패가 50~60년대의 구 소련의 광학제품에도 동일하게 덧씌워져서 저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이미 해외 사용자들에게 재평가받고 마니아 층의 호평 속에 이제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렌즈들도 상당하다.
사람들은 최신 기술과 신상에 열광하지만 항상 그러지도 않는 듯하다. 디지털이 가져다준 사진의 변화와 필름과 비교되는 디지털 신기술의 향연은 역설적이게도 골동품으로 용도를 다해 쓸모가 없던 올드 렌즈에 다시 일정의 쓰임을 되찾아 주곤 한다. 물론 필름을 즐겨 사용하는 유저들도 있지만, 이들에게도 올드 수동 렌즈는 한물간 또는 수집이나 취미 정도에 그칠 정도다. 디지털 카메라와 수동 렌즈의 이종교배는 그 시작이 디지털 피로에 의한 것이든, 복고적 향수에 의한 것이든, 메이저 제조사의 값비싼 최신 렌즈에 대한 반감이든, 그 동인이야 어찌되었든 디지털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수동 올드 렌즈의 새로운 용처가 생겨났고, 소수의 사용자로 시작된 구 소비에트 & 러시안 렌즈의 수요는 그동안 방치되어있던 러시아 곳곳의 렌즈 냉장고 같은 컨테이너 창고들이 열리면서 쏟아져 나왔다. 그 풍부한 수량과 낮은 거래 가격으로 충분히 매력 있는 렌즈다. 하지만 구 소비에트 연방(러시안) 렌즈에서 모든 기간의 모든 렌즈가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며, 소비에트 경제가 흔들리던 시기의 광학 제품은 도리어 당시의 독일이나 일제 광학 제품과 비교해서 더 격차가 커 보인다. 이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오래된, 특히 2차 세계대전 직후와 1950년대의 러시아 렌즈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1960대와 1970년대 이후의 광학제품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구권 카메라와 광학제품(주로 독일산과 일본산 카메라)에 비할 때 개인적으로 큰 감흥이나 적극적인 소유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수량적, 가격적 매력과 더불어 1940년대 독일(칼 자이스)의 광학기술이 큰 변형없이 적용된 렌즈는 또 다른 매력으로 작용한다. 칼 자이스나 라이카의 오리지널을 당시 광학 그대로 즐기기엔 수량이 제한적이고 고가 골동품으로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안 렌즈는 좋은 대안이자 대체제로 나름의 역할을 확고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의 트렌드, 경쟁력과 시장에서의 선택, 그리고 기업적 이익만을 추구한 세계 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시장 하의 주요 카메라 브랜드 메이저 제조사(Nikon, Canon, Sony, Pentax, FujiFilm, Olympus, Panasonic, Samsung 등등)들 또한 완전 무결한 것은 아니다. 매번 제품을 팔기 위해 되풀이되는 신상 출시 놀음과 얄팍한 상술, 그리고 원가 절감의 꼼수에 대한 피로도는 원만한 얼리어답터 마저 질릴 정도로 탐욕스러운 행태에 실망하고 지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나 욕망은 일반적으로 최신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옛스러움의 것으로 흐르기도 한다.
구구절절 길게 글을 이어오며 이유를 찾고 있지만, 나의 결론은 처음 몇 문장에 나타나있는 듯하다. 골동품이면서도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충만이 현재 소비에트와 러시안 광학을 접하는 현재의 나의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