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가을을 맞은 나들이 길에 대림 미술관의 전시회에 들렀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시나 공연을 즐기는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지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었고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코코 카피탄이라는 아주 젊은 아티스트의 전시회였는데, 사진 전시회와 각종 소품, 작자가 쓴 글 그리고 몇 가지 새로움이 더해진 조금 실험적인 전시회였다. 스마트 폰으로 앱을 받아서 작품 설명을 듣는 뭐 그런 것도 있었다. 비주얼 아트에 말이 많은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설명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전시회 소제는 '오늘을 사는 너에게?' 대충 이랬다. (정확한 전시회 이름은 찾아서 제목에 보충하겠다)
20대의 청춘들을 위한 전시회 컵셉이었던지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술이 좋은 점은 세대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은 착각이었거나 예술에 대한 나의 정의가 잘 못된 것이다) 20대의 젊은 아티스트의 풋풋한 감각, 그리고 그만큼 그 작품들 속의 관념이나 사유의 깊이가 떨어져서 집중하기 어려웠고, 구찌인지 하는 회사와 협업한 작가라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을 전도유망한 젊은 아티스트라는 소개/홍보?에 그만 쓴웃음이 삐져나오고 말았다.
예술가의 가능성이나 역량도 어떤 회사와 협업하는지에 따라 평가되는 세상인 것인가? '그 사람 구글 (유명한 해외 법인 회사 또는 국내 대기업) 다녀!' 하면 없던 신뢰도 샘 솟는 그런 세상 말이다. 자본이 예술을 소모하는 방식이 가장 주된 문제지만, 이런 자본의 달콤한 유혹에 부합하는 예술을 뭐라고 평해야 할까. 자본이나 거대 상업주의들이 예술을 어떻게 소모하고 이용하며 이를 고착화시키는지 고심/염려하게 된다. (왠지, 자본과 젊은 아티스트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서로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연상되어 씁쓸하다)
사진에 관심이 있다보니 전시된 사진만 대충 둘러보았는데,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 패션 잡지 등으로 친숙해진 색감, 흔히 인스타그램에서 즐겨보던 색감과 패션 회사와 협업한 티를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패션 잡지에서 흔히 보았던 류의 사진(일부 수위를 넘어서는 노출 등으로 일반 잡지에는 실리지 못하겠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딱 그 정도의... 그리고 그것 또한 유년의 순수 원형이나 유아기적 천진난만함의 표현인지 모호했다) '패션이 없는 패션 사진'이라고 제목 붙어 있던데, 아무리 봐도 패션 화보용에 딱 적합한 이미지로만 보이는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소녀풍의 그 형형색색의 폰트와 조금은 낯 간지러운 (조금 과장하면 '중2병'스러운 관념과 사유의) 텍스트들을 곳곳에 펼쳐두고 있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회고에 대한 내용이 제법 있었는데 워낙 젊은 작가이다 보니 유년기나 청소년기의 풋풋/미숙함이 중2병을 연상시켰는지 모른다. 회고는 인생의 좀 더 깊은 맛을 보고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 같다. 청춘 시절부터 과도한 회고를 하다 보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최근 예술 사진에서 인격이 배제되고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현대인을 묘사한 사진의 흐름이 패션 화보의 무표정한 인물 표정과 유사한 면이 있고, 다큐멘터리나 포토 저널리즘 취향의 사명감 높은 거창한? 사진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제 취향이 이전과 다른 새로움과 생소함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를 갖는 것을 저해하는 걸림돌이었지 싶다. 라이프지 마저 문을 닫은 시점에 아무리 좋아하고 그리워해도 다큐멘터리나 포토 저널리즘 사진은 이제 이전만큼의 성세를 누리지 못할 것이고 디지털 이미징 시대에 다채로운 변화에도 열린 사고를 가져야겠지만, 아무리 고심해도 그 대안이 상업주의와 엮이고 허술하고 미숙한 관념의 결과물이라면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다 해도) 그리 반갑지 않고 그 흐름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
조금 실망스러웠고 나의 취향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전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갔으면 나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유익하고 재미있게 즐겼고 영감을 얻어왔을 사람들이 있을테니 불평불만은 이 정도로 해두자. 옹졸하고 이해력이 부족하며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한 고지식과 꼰대 마인드의 문제일 뿐이다.
가장 사과하고 미안해야 할 이는 이 전시회에 동행한 그녀였고(이 전시회를 고른 사람이 그녀였으므로 미안함이 어느 정도 상쇄되긴 했다) 불만 가득함에 돌아오는 길에 '차라리 맛있는 칼국수나 먹으러 갈 걸'이란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금방 후회했지만, 최소한 자기 생각에 솔직했다는 점에서는 용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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