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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산들산들(日常茶飯事)

한달을 하루처럼 산 느낌 / 18년 2월


새해 시작이 엊그저께 같은데 한달이 지났다. 과장 조금 보태면 한달을 하루처럼 보낸 것 같다. 2018년 새해 시작과 동시에 한달을 보내고 2월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당황스럽다. 언제나 시간 참 빠르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점점 빨라지는 시간에 망연자실이다.


올 겨울 추위는 유난스러워서 햇볕 잘드는 창가에 붙어 있는 때가 많았다. 남향의 큰 창을 가지고 있는 오피스텔에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오피스텔 낮은 층에는 많은 상가들이 있고 늘 사람들로 붐비는데, 요 근래 강추위에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인지 늘 지나다니는 로비 근처에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만, 폐업인지 이전인지 모를 이유로 텅빈 점포를 보면 오지랖 넓은 걱정이 앞선다. 이 추운 겨울에 그들은 잘 살고 있을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고양이의 표정도 조금은 넋나간 표정처럼 보인다.





어머니는 아직도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장독 항아리를 애지중지한다. 오랜만에 불러보니 '장독'이란 이름도 낯설다. 못알아 듣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장을 담는 독"이라고 풀어서 알려줘야지 겨우 알겠다. 볕 좋은 날이면 빼꼼히 열려진 항아리 뚜껑을 본다. 몇해 전부터 항아리가 비어있는 적이 많지만, 어머니의 항아리 사랑은 여전하다. 어린 시절 마당 한 켠에 장독대가 있었고 윤기나는 항아리들이 제법 많았다. 절구도 있었다. 자연석을 깍아 만든 투박한 모양이었는데, 어렴풋 하지만, 겨울이 시작될 무렵 볕이 따사로울 즈음이면 메주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삼고 절구에 넣어 찢곤 했다. 어린 시절의 샛노랗고 따스했던 기억만큼이나 노란 콩이 기억난다. 메주 만드는 날에는 삶은 콩을 설탕에 비벼서 달콤하고 고소한 간식으로 먹곤 했다. 마당을 가로지르던 빨랫줄과 볕 좋은 날 장독 위로 피어나던 아지랑이도 그립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걸어가다 보면 한 켠에 장독을 모아둔 곳이 있다. 아마도 엎어 놓은 것이 많은 걸 보니 의자나 벤치 용도로 앉아서 잠시 쉬거나 이야기 나누라는 뜻인 듯한데, 추억의 장독대가 떠올라 정겹다. 바퀴를 굴리며 놀다가 장독 뚜껑을 깨뜨렸던 적도 있는데, 크게 혼날까봐 그 날 하루 만큼은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지냈다.


볕이 따스한 날에 아파트의 항아리로 만든 벤치를 다시 한번 찾아 잠시라도 추억에 잠겨서 일광욕이라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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