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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쥐구멍에 든 볕

"숨어있기 좋은 방" / A good room to hide



딱히 추구하는 사진의 스타일이나 촬영되는 피사체나 장면에 대해 특정한 가치 부여 없이 그냥 저냥 취미 또는 일상의 소소한 기록이나 추억의 흔적 쯤으로 생각했고 딱 그정도 수준에 만족하며 지금 껏 지내왔다. 감정의 큰 기복없이 평온한 나날이었지만, 시간에 떠밀리듯 보내는 날들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버리고 또 그것에 쉽게 익숙해져서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았다. 분명 변해가는데 무엇이 변했는지 꼭 집어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똑 같은 매일의 반복 같았는데 20년 전의 사진을 보니 너무 낯설다. 그 시절에 추억하는 것이 꽤 많은데 사진으로 보는 모습은 왜 그리 낯이 선 걸까. 기억 속의 감상과 시간이 훌쩍 지나 옛 사진에서 마주하는 모습은 너무 큰 차이가 있어서 사진이 잘못 되었나 싶기도 했다. 사실은 기억이 왜곡되었던 것일 게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사진을 남기는 것이 쉽지 않아서 아련하게 미화된 기억들이 끼어들었지 싶다. 필름으로 남긴 몇 장의 사진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필름 사진 특유의 감성이나 색감 탓으로 뒤틀려진 것이라 해도 상관은 없다.


지금은 스마트 폰에 내장된 카메라 등으로 쉽게 일상을 남기고, SNS든 쉽게 저장되고 흔하디 흔한 사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런 넘쳐나는 이미지들도 언젠가는 지워지고 몇몇 장만 남아서 오늘을 추억하려나 싶다.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또 모든 일상의 모습을 다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오늘과 다가올 먼 내일에 이질적인 느낌이라이라도 좁히려 부지런히 사진을 남겨야지 마음 먹었었다. 일이나 직업으로 좋아하는 분야를 택하지 않았던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근에는 영상 촬영과 편집에도 마음이 동해서 관련 정보를 얻을 요량으로 책을 찾아서 읽고, 해외 웹 자료와 감각적인 유투브 크리에이터들의 세계를 엿보고 있었다. 물론, 영화 제작이나 예술 경지의 비디오 세계를 바란 것은 아니고, 지금 껏 견지했던 사진에서와 같이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담아내는 기록 영상이나 감상을 담아둘 업그레이드된 '일기장' 정도를 목표로 했다. 기존의 영상 제작/유통이 누렸던 전문적 영역은 디지털 기술과 각종 스마트한 기기들로 우리 일상에 흔하게 스며들어 있어서 어쩌면 십수년 전에 필름 사진보다 지금의 각종 영상을 스스로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더 대중 친화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수다쟁이에게는 정적인 사진으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짧은 영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촬영하는 기술이나 장비 문제 뿐만 아니라 4G니 5G 등으로 불리는 초고속 무선 전송 기술과 고성능의 스마트 폰은 그 동안 데이터의 용량이나 번거로운 전송 문제 그리고 영상을 시현할 디스플레이 장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렸고, 유투브나 각종 SNS, 각종 클라우드(Cloud) 서비스는 영상의 공개와 유통, 저장의 걸림돌 마저 모두 걷어치운 듯하다. 바야흐로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영상을 만들고, 저장하고, 공개하고 그리고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난 기억과 오래된 것에 너무 얽메여 있었나 하는 반성도 한다. 보수 정권이라고도 부르기 부끄러운 9년의 기간동안 마음의 불만이나 좌절을 애눌러 엉뚱한 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써 외면하고,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현실과 적당한 타협과 도피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징후의 하나가 현재의 가치와는 동 떨어진 오래된 수동 렌즈나 수동 카메라 등에 골몰했었나 싶다. 돌이켜 보면 꼬박 십년을 허송 세월로 보냈다. 이 블로그 또한 허송 세월의 고루한 나날에 '숨어있기 좋은 방'이었다. 아니면 누군가 찾아와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꽉 막힌 벽에 낸 조그만 창(窓)이기도 했다.





그 동안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치다가 지쳐 포기한 날벌레 마냥 널부러져 있었다. 아니 스스로 몸부림치다가 더 꼼작 못하는 꼴이 두려웠다. 과정의 우여곡절은 어찌되었든, 어두운 터널 같았던 9년여가 지나갔고, 이제 세상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꿈을 꾸고 재미있는 것을 도모하고 싶어졌다. 흘러가 버린 시간이야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나 붙잡아야지. 이제 '숨어있기 좋은 방'을 나서야할 때다. 하루 아침에 뭔가를 뚝딱 만들 수 없으니 연말 쯤이 되어야 뭔가 수다꺼리를 만들어서 보일 수 있겠지만, 먼길도 한 걸음 부터, 이제부터 출발하면 해가 저물기 전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테다.



블로그에서 수다를 시작하면서 애초에 목표했던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속물이 되어버렸지만, 가능한 속물끼를 뺀 담백한 수다가 되길 바랬다. 신제품 써보고 예찬하는 사용기나 제조사의 홍보를 그대로 엎조리고 이를 분석하는 리뷰는 철저히 배제하고 싶었다. 새로운 상품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요긴한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신제품은 언젠가는 또 다른 신제품에 밀려나게되니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단물 빤 홍보 블로그의 그런 글들을 흉내를 내기는 싫었다. 유통기한에 얽매이지 않는 수다였으면 했다. 그리고 감상의 나열 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했는데, 그리 썩 잘 하진 못했다. 그리고 나름 긴 시간과 노력을 깃들여서 풀어놓은 수다들은 왠지 혼자 떠들고 있는 듯해서 조금 외로웠다.


사진과 관련해서 아직 하고픈 얘기가 꽤 남았는데, 순간광 조명의 활용이나, 후반 작업에서의 기술적 또는 감각적인 과정들, 색이 만드는 미묘한 느낌이나 감상 등 아마추어의 주제 넘은 엉성한 수다를 마저 쏟아내지 못한 것이 또한 아쉽다. 영상과 관련해서 못다한 수다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하지만, 영상에서는 굳이 블로그의 긴 글 타이핑으로 시간을 낭비하거나 두번 되풀이 할 필요는 없으니 이 또한 쉽지 않겠다.



그간 정들었던 올드 렌즈와 수동 카메라들을 선반에 잘 모셔두고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걸음을 떼어보고 싶다.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숨었던 방"이 그리워질테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그렇듯, 그리움 반, 후회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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