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눈이 꽤 내렸다. 시간에 쫓기는 삶에서는 눈이라고 하면 이런저런 불편함에 대해 먼저 생각했었고 눈 내리는 아침을 즐기기는커녕 잡다한 걱정과 불만에 투덜거리기 일수였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실상은 다람쥐 쳇바퀴 같았던) 생활에서 튕겨지고 낙오?된 이후에도 한 동안 똑같은 걱정과 불만으로 눈 내리는 날들을 즐기지 못했는데, 올 겨울에는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눈 오는 아침이 조금 설렜다.
지난밤 요란하게 도착한 눈과 빙판길에 대한 긴급재난문자가 무색하게 창가에 기대어 눈 내리는 풍경과 함께 여유를 즐기며 흩날리는 눈송이를 카메라에 담아보다가 눈이 만든 불편으로 출근길에 발을 동동 굴렸을 사람들이 떠올라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눈송이는 빗방울과 달리 떨어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사진에 담는데 그리 빠른 셔터 스피드를 요하지 않고 눈 자체의 감성도 좋아서 눈송이 사진은 쉽고 즐겁다. 문제는 카메라의 AF를 떨어지는 눈송이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MF/수동 포커스를 활용해서 눈송이가 떨어지는 일정 거리에 포커스를 예측하여 고정하고 촬영하는 것이 좋겠다. 큰 눈송이와 허공의 눈송이의 밀도가 높을수록 포착 가능성이 높아지는 확률과 우연의 중간 즈음에 관련되지 싶다. 그리고 일반적인 설경 촬영에서 자동 노출을 사용할 경우, 노출 보정을 +0.5~1 stop 정도 밝게 조절해서 촬영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하얗게 쌓인 눈으로 인해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한 카메라의 자동 적정 노출(18% 반사율의 중성 회색을 적정 노출의 기준으로 삼는...)에서는 흰 눈이 쌓인 이미지를 촬영하면 조금 어둡게 보이고 전체적으로 노출이 부족한 우중충한 이미지로 촬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RAW로 이미지를 촬영하고 후보정 프로그램에서 노출 보정으로 보정하는 것도 좋겠다. jpeg 촬영이라면 + 노출 보정(0.5~1 stop)을 추천하고 싶다. (흰 눈이 쌓인 풍경이 이미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가감하여 활용하는 방법으로 역광에서의 노출 보정 등과 유사하다)
아무리 느리게 떨어지는 눈송이라지만, 최소 1/500sec 이상의 스피드가 필요하지 싶다. 예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선명하게 촬영하기 위한 셔터 스피드 계산에 골몰했던 적이 있는데 빗방울은 크기가 제각각이라 낙하 속도의 변수/차이가 꽤 크고, 큰/굵은 빗방울일수록 낙하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지는 질량과 중력 가속도와 공기 중 저항이라는 변수에 헤매던 일이 생각난다. 실제 사진의 피사체로 굵은 빗방울이 좋을 수밖에 없는데 예상보다 빠른 낙하 속도로 꽤 고속의 셔터 스피드가 필요하고 비 오는 우중충한 조건을 생각하면 이를 보완할 보조 광원 또는 높은 감도 하의 촬영이라는 조건 등이 까다로워서 포기한 바 있다. 그리고 낙하 물 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벚꽃 잎인데 초속 5cm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에 속아서 진짜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5cm인 줄 믿어버린 어리석었던 기억 또한 문득 떠오른다. 눈송이 또한 바람에 흩날리는 등의 변수가 많아서 딱히 권장할 만한 셔터 스피드는 감을 잡기 어렵다.
정오 무렵까지 눈이 내렸는데 간단한 점심 이후 카메라를 챙겨들고 준비를 마치니 어느새 눈은 그쳐있다. 더구나 개인 하늘에 햇살까지 드리운다. 매서운 바람에 느껴지는 체감 기온과 달리 햇살과 바닥은 따듯했던지 눈은 빠르게 녹아버려 서두르지 못했음을 탓했다. 아직은 이른 초겨울의 금세라도 녹아버릴 눈과 여전히 나뭇가지와 바닥에 남은 마지막 잎새들, 초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푸릇한 물풀, 수면에 비친 파란 하늘 등으로 머릿속에 그렸던 순백색의 눈 세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사진과 관련한 수다를 이어가면서 정작 제대로된 사진은 없는 언행불일치의 블로그가 된 듯해서 부족한 망작의 사진이라도 부지런히 추가해 보려고 한다. 그동안 하드디스크에 공개하기 민망해서 숨겨두었던 사진들도 찾아서 정리해야 하는데 내세우거나 건질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아무래도 인물 사진 촬영이 제일 많고 즐기지만, 사진 속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나의 욕심만으로 해할 수 없어서 아쉽고 한편으론 이러한 핑계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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