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허무하게 지나치는 가을을 보내고 맞는 겨울 초입에는 꼬리를 무는 생각과 잡다한 상념이 끊이질 않는다.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도 모를 지난 몇 달을 돌이켜보거나 헛되이 보낸 한 해에 대한 후회, 다가올 추위와 수능 날 날씨 걱정까지, 가뜩이나 평소 잡다한 망상에 빠져 헤매는 습성에 더해서 한 해의 마무리 즈음의 줄줄이 이어지는 생각들로 설친 밤 잠과 건조한 공기에 하루 종일 눈이 시리다. 이런 때에는 머리를 비우고 낙엽을 밟으며 취미인 사진 촬영에 몰두하면 딱 좋을 텐데, 청명과 서늘해진 공기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자욱한 미세 먼지에 즐기기는커녕 창 밖의 우중충한 회색 도시를 원망하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된다. 이런 날이 며칠 되풀이되다 보니 답답하고 맴돌기만 하는 복잡한 생각과 우울한 가을날이 앙상블?을 이뤄 이 맘 때(겨울의 초입)가 울적하고 쓸쓸한 계절이었나 싶다.
머릿속에 맴돌면 여러 잡념 중에는 사진에 대한 고민도 꽤 있었고, 짧은 이해 탓에 해답을 얻지 못해 고심한 바도 많았다. 그중에서 '디지털 이미징 기술의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사진에 대한 관념과 정의는 필름 시대에 정체된 어중간함에 머무른 점에 불만이 컸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에 살지만 정작 디지털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경계에서 그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헤매거나 무의식적이든 의도적이든 변화를 부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이유가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인지 무지한 탓인지 고민해야겠지만) 익숙하고 친숙한 사진의 굴레에 디지털 사진을 욱여넣고 있었던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이전의 사진에 대한 잡다한 수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었는데, 필름에서 디지털 이미징 시대의 대전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름 이미지의 정의와 관념에 묶여 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서없는 수다이지만, 디지털 사진과 필름 사진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해 보자.
첫머리에 밝혀 두고 싶은 것은 필름 사진이나 디지털 사진의 우위나 장단점을 이야기하려는 수다가 아니며, 단지 두 방식의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로 인해 둘 다 사진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접근과 활용, 즐기는 방식에 있어 변화와 이에 대해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다 중 부득이 비교질 등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이 더 낫다 못하다의 의미가 아니다.
▶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
필름의 광화학 반응에 의한 방식과 디지털 이미징 프로세싱에 의한 차이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설명된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으므로 달리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과 그리 차이가 없고, 따로 정의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한다.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 또한 이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에 대해서 몇 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도 있는데, 필름과 디지털이라는 방식의 차이에 대한 사소한 오해 등으로 각각의 특색 있는 두 방식의 사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혼동은 결과적으로 사진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즉, 두 가지 방식 모두 사진이라 불리지만, 그 실질에서는 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름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변화한 이후 두 방식의 차이를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가공의 편의성', 즉, 흔히 "포샵질"로 불리는 후반 작업이나 이미지 합성 등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기존 필름 시대의 정립된 사진에 대한 가치(관 또는 철학)를 존중하는 입장을 견지하면 '디지털 방식의 가공'에 대하여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이런 거부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용 작업 툴로 디지털 후반 작업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런 거부감은 마음 한편에 가상의 마지노 선을 만들고 "여기까지는 디지털에서 수용할 수 있는 후반 작업이고 이 선을 넘어서는 가공/변화는 허용할 수 없어!"라고 다짐하곤 한다. 얼마 전까지 그 한계는 리퀴파이(픽셀 유동화)를 이용한 사물 윤곽의 변형이었고, 때로는 피사체 본연의 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색보정 정도가 용인할 수 있는 경계로 스스로 설정하곤 했다. 하지만, 디지털 십수 년간 마음의 경계선이 점차 후퇴하고 있고, 초기의 인색함에는 색온도나 콘트라스트 정도만을 아주 조금 보정하고 자연의 빛이 만든 충실한 재현에 인공의 몹쓸 짓을 저지른 듯한 찝찝함을 맛보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보정이 없는 것은 무성의한 디지털 사진으로 여겨질 만큼 부지런해졌고,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조작?에 무뎌지고 많이 타락?한 것 같다.
필름 사진에서는 '실재'(實在 사실로서 현실에 존재함)의 시각적 재현이 사진 본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장점이었고, 이는 또한 사진이 다른 분야의 시각 예술, 회화 등과 실재의 정밀한 재현/복제에서 비교 우위에 있었고 이는 다시 사진의 기능적, 예술적 확장에 걸림돌이 되어 사실의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진 자체의 용도를 기능 중심으로 제한하는 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필름 인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실재의 재현/복제라는 측면에서 사진은 회화가 차지하고 있던 시각적 재현의 기술적 방법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사진의 위상은 사실 증명의 시각적인 증거와 시각적 현장/현상의 기록으로 수많은 인물 사진과 보도/다큐멘터리 사진을 만들었다. 이는 필름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주요 기능이며 한편으로 무수한 사진을 만들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름 사진에서는 이런 실재의 재현이라는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 떨어져 나와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표현' 수단으로써의 사진, 달리 표현하면 시각 예술로서의 사진은 조금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의 재현과 복제 그리고 증명으로서의 사진과 시각 예술의 사진은 때로는 혼란스럽고 따로 구분되지 않을 때도 많은 것 같다. 재현/복제와 표현은 기술과 예술의 차이를 만드는 것의 경계이며, 고전 회화는 실재의 재현/복제의 역할을 사진에 빼앗기고 비로소 오롯이 '표현'에 집중하여 시각예술로서의 회화가 지금의 성세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된다.
- '재현'과 '표현' / Representation & expression
'재현과 복제 그리고 표현'은 예술 철학에서도 주요한 주제(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등)가 되었고, 사진 예술에 있어서도 꽤 잘 드러 맞는다. 실재의 재현이라는 기능 측면에서 필름 사진과 다를 바 없이 디지털 사진 또한 매우 강력한 시각적 재현 수단이다. 최근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전의 필름 방식보다 더 강화된 편의성과 세밀함을 갖추고 있으며 디지털 사진의 '재현' 수준은 필름 사진 시대의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지털 신호/정보/데이터의 가공의 편의성은 사실의 '증명'으로서의 기능을 심각하게 부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합성이나 CG로 인해 증명으로서 디지털 사진의 지위는 위태롭다 못해 이제 공연히 의심받는 처지에 내몰렸다. 하지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듯이(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사진이 실재의 증명으로서 위기 또는 기능 소멸 대가로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새롭게 재평가되는 (한 세기 전의 회화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개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재현과 표현'에서의 변화는 사진에 앞서 선구적으로 변화해 온 대표적인 시각 예술인 회화가 걸어왔던 역사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고전 회화 이후 후기 인상파의 등장으로 회화에서 색의 변혁/재인식이 이루어지고 이후 추상 미술로 실재의 재현의 핵심이던 형태가 사라지는 변화를 겪으며 시각 예술의 가장 두드러지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름 사진의 기술적 한계(현상 인화 과정에서의 화학적 반응-특히 컬러 필름-은 기술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사진가가 제어하기 어렵고, 후반 작업에서의 표현 방식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로 인해 사진에서 '표현'은 제한적이었고 강력한 '재현'의 도구로서 필름 사진을 정의되고 사회에 기능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며, 많은 사진작가들이 표현의 수단으로써 사진을 활용하기 위해 현상, 인화의 기술적 방식에서 보다 접근하기 용이한 흑백 사진에 집중하였던 것 또한 한편으로 이해되며 불가피한 선택이었지 싶다.
디지털 사진에서 '표현'은 가공의 편의성의 대폭적인 증대로 인해 표현 방식으로서의 한계는 편집/후반 작업 프로그램을 통해 불가능이 없는 것처럼도 보인다. 즉, 사진(특히 예술 사진 분야)에서 '표현'의 제약과 난점들이 디지털 기술로 전환되면서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디지털화된 사진은 데이터의 가공이라는 방식으로 이제 회화 못지않은 '표현'의 수단이자 예술의 한 분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기존의 강력한 실재 재현의 기능은 동영상이나 3D 입체 영상, 홀로그램 등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것이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무렵 사진이 회화의 지위를 찬탈했듯이 필름 사진으로 대표되던 사진의 지위 또한 21세기 초반에 디지털 사진으로 대 전환/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리라.
- 디지털 사진의 재현성 / "보도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기"
디지털 사진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마당에 지금까지 (필름 사진으로 대표되던) 사진의 가장 뚜렷한 장점이자 특징이었던 실재의 재현이나 증명에 대한 집착을 이제 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이는 곧 보도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 분야가 완전히 사라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전의 굳건한 지위와 신뢰를 유지/지속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런 보도와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기는 걸프전의 CNN을 통한 위성 생중계로 인하여 한 장의 사진이 가지던 실재와 사실의 재현, 그리고 증명이 거의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영상에게 자리를 내어 준 것이 대표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사회적인 여러 배경과 메스미디어의 역할 변화 등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지만, 보도 사진에 한정해서 생각해 보자) 그 외 한 장 또는 몇 장의 연속된 또는 연작의 사진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다분히 실시간의 현장감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동영상에 비할 바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한 두장의 이미지와 문자로 이루어진 20세기의 정보 전달 방식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는 영상과 쌍방향 정보 전달 방식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불친절하며 원활한 정보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비교되지 못했으며 시청자나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어렵다. 이런 변화의 흐름과 시대적 요구에서 필름 사진으로 대변되던 포토 저널리즘은 기능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필름 시대의 사진의 가치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구닥다리의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의 필름 사진(포토 저널리즘)이 가지던 기능은 여전히 일부 유효하며, (이전과 같은 영향력과 지위를 가지지 못할 뿐) 여전히 실재의 재현과 사실의 증명, 기록으로서 제한적 기능할 것이다. 하지만 주요한 역할은 사진의 발명으로 인한 회화의 기능적 역할이 변화하였듯이 사진 또한 예술적 기능이나 역할로 그 나름의 깊고 진중한 세계가 유지되리라 생각한다.
한 장의 사진 즉, 정지된 시각적 이미지 하나가 가져다주는 정보만으로 현대인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 및 시각적 감동을 일으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디지털 이미지 시대 전환 이후로 너무 많은 이미지가 소모되고 있고, 많은 이미지로 인해 무감각해지며, 영상과 영화 등의 충실한 시각 정보와 소리 정보가 결합되고 시각과 청각을 더 자극하며, 더구나 다수의 정보를 통한 서사의 장면의 영향력이 기존 사진을 급격하게 대체한다.
이런 많은 정보와 자극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에 대해 감각적으로 무뎌진 것 같다. 이런 무뎌진 감각을 깨기 위해서는 더 자극적이고 극적인 장면, 선정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필요하고 이런 자극에 올인한 풍조는 황색 언론의 대두와 이를 겪으며 나타나는 언론과 자극적 보도의 피로감과 거부감만 증대시켰지 싶다. 진보의 가치가 사그라든 자리에 보수의 가치, 자본주의 보수의 속된 가치는 돈과 상업적 이익이 지배하므로 사회 전반에 눈을 돌려 인간성, 정의, 도덕에 대하 이슈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경제, 연예, 소비, 특히 자신의 쾌락과 행복, 안녕과 직접 관련된 이슈에만 관심을 갖는 풍조에서 나와 별 상관없는 먼 나라 정의의 문제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 이상 환영은커녕 관심 조차 받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은 아닐까 싶다. 라이프지의 폐간 (잡지는 2007년 폐간되었고, 웹상에서 데이터 베이스를 운영하며 온라인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지만)으로 대표되는 보도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는 아니 점점 심화되고 있는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 디지털 사진에 대하여
디지털 정보의 가공 편의성에 대한 연장선에서 기존 필름 사진을 뛰어넘는 디지털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열린 사고 필요하지 싶다. 디지털 사진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 하기에는 필름 사진과 공유하는 부분, 사진술, 이미지로서의 일반적 성격 등 거의 변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고 이와 달리 아날로그 신호를 포착하여 디지털 (A/D) 전환을 통한 전송, 처리, 저장 방식, 그리고 가공, 복제, 전파 등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부분 또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필름 사진 또한 자유로운 복제가 가능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실질에서는 디지털 복제와 차이가 있다. 필름 사진 복제의 경우, 완벽히 동일한 복제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필름의 물리적 특성상 수없이 복제가 일어나면 원본과 복사본이 완전히 동일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디지털은 원본과 복제가 모두 동일하고 복제물 사이에도 차이가 없으며, 무한 복제 또한 가능하다.
디지털 사진으로 인해 재현에서 표현으로 변화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 싶다. 최근의 소셜 커뮤니티 등의 트렌디한 사진에서 필름 감성이나 현실 색과는 조금 다른 색감(저채도 등등) 선호하는 경향 또한 이런 변화의 흐름에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후기 인상파에 의해 고전 회화의 색채가 다채롭게 변화하였듯이 실재의 재현이라는 족쇄에서 다채로운 색감과 필름 감성의 흐름은 사실적인 색의 '재현' 보다는 감성적이든 감각적이든 '표현'에 더 무게가 실린 변화로 현실의 사실적인 색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처음에는 기존 필름 카메라를 대체하기 위해 총 천연색의 색감이나 사실적인 재현에 대한 강조가 주요 광고 목적이었지만, 디지털 기술과 제품이 기존 아날로그 제품을 성공적으로 대체한 시점부터는 필름과 구별되는 디지털 만의 장점이 가공 편의성에 대하여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에서 피사체의 형태와 윤곽과 더 나아가 구도를 파괴할 수 있을까. 현대 미술이 추상으로 발전하였듯이 디지털 사진이 구체적인 피사체의 형태나 윤곽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까지 변화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히 기존의 사실적 재현을 초월하는 구성의 파괴는 회화에서 그러했듯이 예술 사진에서도 유사한 다양한 시도와 변화가 흥미롭다. 이런 사실적 재현성의 파괴는 자유로운 표현의 이면 모습이 아닐까 싶다. 다수의 이미지 합성을 통한 표현이나 팔다리를 길게 하거나 신체의 곡선을 강조하거나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만드는 등의 이미지 가공은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보인다. 형태의 변형이나 파괴는 처음에는 이질적일지라도 점차 익숙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탓에 각종 상업 광고 이미지 등의 합성이나 커뮤니티의 합성 짤, 사실적인 CG(컴퓨터 그래픽) 등에 별 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때도 많다. 컴퓨터 그래픽이 되던 디지털 이미징이 되던 가상현실이 고도로 발전하게 되면, 실재와 가상의 구분조차 모호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디지털 가공에 의한 표현은 눈속임으로 실재의 재현이나 증명하려는 의도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지 싶다. 합성이나 조작을 통한 사실의 왜곡이나 거짓 증명은 예술적 '표현'과는 너무도 다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디지털 사진의 재현에 기반한 신뢰나 증명은 거의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흔히 사진을 "포토그라피 -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일컫는데, 디지털 사진의 가공 편의성은 빛의 그림을 위한 적절한 도구가 아닐까. 단순히 재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표현'으로 사진의 영역을 확장할 강력한 수단으로써 디지털 사진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장치를 사용하는 현시점에서 필름 사진의 정의와 개념을 고집하는 것은 총 천연색의 붓과 펜, 안료를 가지고 흑백의 고전적인 수묵화만 주야장천 그리는 고집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사진에는 그에 걸맞은 적절한 가공과 새로운 표현에 대한 열린 사고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필름 카메라 시대에 청춘을 보낸 마지막 세대로서 여전히 필름 사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그 당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기억에 기반한 필름 사진이 스스로의 사진관에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게 된다. 글을 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포스팅을 가장한 일기를 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