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ories about photography and cameras/One more step

사진, 그리고 한 걸음 더. 1 - 사진 촬영의 주체와 객체 (촬영의 선택권과 권한) / The relationship between photographer and subject

 

Notice -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불거진 일명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의 비도덕적이고 삐뚤어진 행태와 사진 촬영 과정에서의 성폭력 등이 드러나면서 순수하게 사진 촬영 자체를 즐기던 사진 애호가들 조차 부끄러워지는 현 사태가 영 못마땅하다. 어디에나 잘 못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일부분의 극소수 사진가들만에 삐뚤어진 행태나 관행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진 촬영이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와 개인적인 의미는 무엇이며, 사진 촬영이라는 행위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의미 있고 좋은 사진에 대한 정의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사진 촬영과 관련한 기술과 카메라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간 먹고사는 문제 즉, 생존을 위한 일차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총력전에 매몰되었던 탓인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허용되는 권리나 책임 특히, 취미나 여가 생활에서의 관용/허용 범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보인다. 따라서 사진 촬영과 그로 인해 취득한 이미지를 사용/소비하는 데 있어 일반 시민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충분한 논의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굳이 몰카 등의 범죄와 연관 짖지 않아도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사생활 등을 침해하는 사진이나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사진이나 영상의 촬영 등은 함께 사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이나 평안을 위해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명확하고, 초상권 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타인의 모습이 함께 담게 되는 경우, 어느 선까지가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인지 잘 알지 못하고 알기도 어렵다.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촬영자의 사진 촬영에 대한 순순한 의도나 선량한 통제와 관리만을 바라기에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기준의 부재를 감안하면 엮인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사진 촬영의 대상이 가져야하는 선택권

사실, 스스로도 사진에 대한 본질적인 답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출생 이후로 그것이 백일 사진이든 돌 사진이든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진에 찍히고 살았고, 선택권 없이 사진 촬영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유년 시절 이후 꽤 오랫동안 유지된 탓에 너무 익숙한지도 모른다. 학적부 등에 등재될 목적으로 데이터화를 위한 증명사진 등에 의무라는 형태로 내몰리고 졸업 단체 사진 이든 뭐든 사진 촬영의 대상이 되는 것에 실질적인 선택권을 가져본 적이 없지 싶다.

어른이 되고 스스로 사진을 촬영하는 때가 되었을 즈음, 그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사진 촬영의 대상이 되는 그들에게 (이전 사진 촬영 객체로서 선택권이 없었던 것처럼) 나 또한 별 다른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구나 촬영을 핑계로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사진 촬영의 대부분의 결정권은 카메라를 가진 사람에게 고스란히 남았다. 흔히 필름 카메라 촬영의 과정이 로딩(장전)과 슈팅(발사)이었음을 돌이켜 보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발언과 흡사해 보인다. 사진 촬영자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이지만 그 순간 사진 촬영과 관련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힘(이를 '권력'으로 대체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사회관계 내에서 자기 의사를 대립적 의사에 대하여 관철시키는 모든 가능성")의 속성에 견주어 보면 일응 사진으로 인해 비롯되는 여럿 무례하고 독선적인 (비공개 촬영회의 추악한 행태 - 돈으로 촬영 객체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행태는 이런 권력 관계를 더 공고하게 기폭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행태의 내재된 심리 상태나 권력 구조 등을 살짝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촬영의 대상이 촬영과 관련한 일체의 선택권이 없을 때에는 정당한 사진이라고 보기 어렵다. 흔히 길가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빈궁한 사람을 별 다른 악의 없이 촬영한 사진은 정당한 사진일까? 이를 공개하거나 유포 등의 사후 이용이나 배포 이전에 찍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위법성이 조각되는 조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위법하지 않다고 그것이 정당하다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흔히 초상권이란 추상적 권리와 이에 따른 법리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지만, 초상권 즉, 법적인 다툼 이전에 사진가의 직업 또는 행위의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 우선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사진사에 흑백으로 담긴 (당시의 사진가들이 예술적 사진으로 흔히 추구하던) 뒷골목 빈민층의 사진들에서 대단한 영감을 얻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많이 들기도 한다. 빈민들의 남루하고 고된 삶이 그 당시 사람들은 흑백 이미지로 지켜보며 예술로 인식했을지 몰라도 지금 현대적 기준에서 보면 이런 촬영은 무례하고 비 인간적이며 피사체의 인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진처럼 느껴진다.(당시의 계급의식 등에서는 이런 사진들이 빈궁한 삶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행위로 도덕적인 행동을 촉발하기 위한 사회적 목적 등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흔히 가족 사진 등 개인적인 사진에서 이런 촬영 대상의 선택권이나 동의는 무의미한 것일까? 아이들의 사진은 언제나 훈훈한 마음을 갖게 하지만, (촬영자가 부모이고 자신의 아들 딸을 촬영한 것이라도 상관없이) 촬영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권을 촬영 대상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법률적인 권리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타인의 아이라면 이 문제는 결코 무시하고 모른 채 할 문제가 아니며,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촬영에 대한 선택권 내지는 최소한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촬영된 이미지의 전용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되며, 촬영 객체의 동의 없는 이미지의 사용이나 전용은 더 신중하고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할 문제다. 사실, 촬영된 이미지에서 공개되는 것은 촬영된 대상이고 촬영자는 대부분 따로 밝히지 않는 한 공개되지 않고 익명성에 숨어버리기 십상이다. 전문 카메라가 되었든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사진이든 각종 커뮤니티나 SNS에 올라오는 그 무수한 사진(스스로를 촬영한 ‘셀카’ 등을 제외하고)은 촬영 객체인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었을까? 촬영자 또는 게시자의 선한 의지로 이를 모두 정당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진 촬영의 동의는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 카메라 앞에서 미소 짓거나 포즈를 취하는 행동 등은 사진 촬영의 묵시적 동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확대 해석해서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때때로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등의 사진과 같이 예외가 있을 수 있겠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영국과 미국의 빈민층 사진 중에 대부분은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사진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사진(가족 사진 등)과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구분과 차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좀 더 다루자)


사진 촬영의 권한에 따른 책임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 촬영자는 그 행위(카메라에 대상을 담는 일련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갖는다면, 그 권력은 적절한 범위 내에서 통제되고 제한되어야 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그 권력은 흔히 일상에 언급되는 일반적인 권력에 비하면 너무 다른, 하찮은 것일지 모른다. 순간적이고 제한적이지만, 타인에게 사진 촬영과 관련된 어떤 행위를 지시할 수 있고 (대상의 위치나 포즈나 표정 등등) 그 촬영된 사진(이미지)을 장래에 임의로 사용/처분할 일체의 권한까지 감안한다면 그리 하찮게만 여길 것은 아니다. 자연 풍경이나 동물/정물을 촬영할 때와 달리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촬영에서 권한과 책임 문제는 고민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촬영 대상을 멋들어지게 사진에 담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촬영에서의 독단과 독선적인 행위에 정당성이나 면죄부가 주어질 것 같지는 않다. 대상에게 촬영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촬영의 대가는 정당한 촬영 조건에서의 대가만을 의미할 뿐이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진을 촬영한다'는 의미에서 주체는 촬영자일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사진 촬영의 의미에는 "찍는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사진 촬영에서 "찍힌다"(촬영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 또한 거의 균등하게 반반을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진 촬영의 주체는 찍는 사람인 동시에 찍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권한이나 권력이 어느 일방에 전적으로 귀속하지도 않아야 하거니와 주체와 객체를 나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진의 대상이 구도와 포즈를 결정하고 촬영자는 단순히 지시에 따라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의 권력/권한 구도는 반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촬영된 사진의 사용/처분 권한은 누구에게 귀속될지는 예측하기 매우 쉽다. 그렇다면 단순히 촬영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권한/권력을 가진다는 해석은 무색해진다. 따라서 단순히 권력관계는 촬영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상관없이 해당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지위나 자격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사진 촬영에서의 권한이나 권력 관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촬영자와 피 촬영자가 서로를 의사를 주고받음에 자유롭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합동/협력 작업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촬영자가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더 많은 경우가 많을 테니 촬영자에 의해 주도되는 일방의 작업에 거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다. 이 경우 협동/협력의 평등한 관계에서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과 촬영자의 열린 마음과 촬영 대상에 대한 배려가 요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찍는 일체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숙련된 사진가라면 이런 최소한의 배려와 최대한의 책임은 반드시 필요하지 싶다.

 


");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