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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 about photography and cameras/One more step

사진, 그리고 한 걸음 더. 4 - 잘 찍힌 사진과 좋은 사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Technically perfect photos & Great photos

 

Notice - 상식 수준에서 다루는 비전문적이고 깊이 없는 포스팅이므로 숨겨져 있을 오류와 논리적 비약, 수다쟁이의 헛된 망상에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이란 무엇인가란 좀 거창한 주제에 매달려 있는데 사실, 사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쌓여 갈수록 더 감을 잡기 어려웠고 이런 수다로 풀어가며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사진의 본질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를 떠벌이다 보면 어렴풋이라도 사진의 진면목에 대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 정체되고 의욕도 사그라져가는 사진에 대한 애정을 다시 되돌리고 싶은 기대의 반영이 있었다) 수다쟁이의 망상과 주절거림을 한두 번 겪어보면 껍데기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는 공허하고 쓸데없는 수다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을 테지만, 열심히 쫓다 보면 얻어걸리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수를 바란다. 아무리 수다가 길어져도 더 헤맬까 봐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카메라를 손에 잡기 시작할 무렵부터 고심했던) 사진 잘 찍는 방법과 좋은 사진의 관련성이다. 사실 이 두가지는 그리 구분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냥 동의어 정도로 생각했다. 잘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 될 개연성이 높고, 좋은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일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잘 찍은 사진이 항상 좋은 사진인 것은 아니며, 좋은 사진이 항상 잘 찍은 사진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둘을 구분하거나 따로 논할 이유는 없지만, 이 둘을 통해 보다 사진의 본질 또는 왜 사진을 찍을까 하는 고민의 해결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듯싶었다.

 

▶ '잘 찍힌/찍은 사진'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잘 찍은 사진은 노출, 포커싱, 심도, 구도, 선명함의 유지, 자연스럽고 다채로운 색 표현 등이 구현된 사진/이미지를 의미하지 싶다. 즉, 촬영 기술적으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진을 잘 찍었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기계적/획일적으로 판단/평가하기 어렵고, 저마다 적절한 정도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도 있으므로 각자의 취향이나 중점을 두는 가치에 따라 잘 찍은 사진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 않을까. 이런 모호함을 해결하기 위한 흑백 톤 기반의 존 시스템(존 스케일)은 적절한 노출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어 톤의 표현에 대한 지표로 지금까지 통용되고, 18% 중성 회색에 기반한 기계적인 측광 시스템이 자동카메라에 측광 기준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계적, 평균적인 방식이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고, 촬영자가 의도한 노출값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촬영자가 직접 노출의 정도를 조정하고 보완해야 했다.

필름 카메라는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촬영 시에 결과물을 예측하기 위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했다. 이는 특히 노출과 관련한 미세한 조정이 꽤 중요했는데, 카메라의 측광 시스템이 가지는 기계적 평균의 한계를 적절히 감안하여 주변의 빛의 조건에 따른 기술적 고려가 주를 이루었지 싶다. 따라서 이 시대의 사진작가들은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과 이를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 싶다.

이후, 자동 초점과 보다 향상된 자동 노출 기능으로 촬영자는 구도와 순간 포착에만 집중하면 잘 찍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카메라들이 속속 등장했고, 여러 조건과 경우의 수에도 간단한 조작으로 대응할 수 있는 편의적 기능이 대폭 향상되었으니 사진 잘 찍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특히, 예측을 통한 촬영과 결과물을 보기 위해 촬영 후 별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름 카메라와 달리, 디지털 카메라는 촬영 직전 실제 촬영되는 이미지의 노출, 포커싱, 구도, 색감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식(뷰파인더 시스템이나 라이브 뷰)이 일반화되었고, 촬영된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다시 촬영할 수 있으므로 기술적으로 잘 찍은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카메라 자체의 자동 촬영 모드나 프로그램 모드를 통한 촬영도 별 다른 고민 없이 잘 찍은 사진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잘 찍은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사진 잘 찍히는 카메라가 아니면 일반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사진을 처음 찍는 초보자든 경험이 풍부한 사진 작가든 주어진 조건이 동일하다면 카메라의 자동 기능을 활용한 결과물의 촬영 기술적 차이 즉, “잘 찍는다”라는 입장에서 그 기능적 우위나 기술적 고하를 논하기 어렵다.

 

▶ '좋은 사진'이란?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여담으로 엇그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 (원제는 Faces Places ‘얼굴들 마을들?’)를 보고 왔다.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작품과 그 속의 영화 예술에 대한 감상을 온전히 쫓을 수 없었지만, 영화의 흐름에 따라 어렵지 않게 잦아드는 따듯함 즐거움에 입꼬리에 미소를 달고 있었다. (일반적이고 주제나 목적의식이 뚜렷해서 무겁기까지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예상하고 극장에 갔었고, 월드컵 시청에 밤잠을 설친 탓에 영화 시작 전 광고 무렵부터 졸다가 영화 도입부를 비몽사몽으로 지나치고 말았다) 젊은 사진작가와 노회 한 여류 영화감독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예술적 유희와 유쾌한 다큐”라는 겉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꽤 진지하고 다양한 주제(반자본주의적인 저항문화와 페미니즘)를 일반인 관객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었고, 그 속의 얼굴들과 시간, 삶의 흔적의 울림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묘한 여운으로 남았다. 현재의 프랑스, 아니 자본주의 체제 모든 사회가 마주하게 된 도시화 그리고 소외된 시골 마을들, 그 시골에서 마주친, 이제 곧 철거될 광부 마을의 주민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유로 변질된 삶의 가치, 그 마을들의 현실, 항만 노동자들과 그 아내들, 노동자로 살아가는 파편화와 부품화 된 사람들의 초상 사진으로 그들의 마을, 직장, 기계 등의 외벽을 꾸미며 행하는 퍼포먼스로 소소한 위안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유희가 재밌다. 사진 전시회 벽이나 도시의 상업용 대형 홍보물에서나 사용될 듯한 대형 프린트로 그들 마을 내 집과 건축물의 외부를 장식하는 일련의 퍼포먼스는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외침과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놀이, 그리고 전시관 벽에 걸리거나 박제화된 예술에 대한 비틀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실제의 마을에 전시되어 사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예술, - 루브르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기존 예술 세계의 진중함을 비틀기도 하고, 그리고 브리콜라쥬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이 주는 유쾌함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사진 예술이든 다큐멘터리 영화든 상관없이, 거창하고 일방적인 예술적 독선이 아니라 자발적인 얼굴들(초상 사진)로 만들어지는 유희와 놀이로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신선했고 한편으론 박제가 된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지 싶다. 흔히 벽화 마을 등에서 보아왔듯이 예술가들이 낙후된 마을을 치장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은혜적 행위로 그 마을의 시장적 가치를 더 높인다는 인위적이고 타의의 의 해법과 달리, 예술은 경쟁적 해법이 아니라 예술만이 할 수 있는 해법, 즉, 그들의 내면을 위로하고 삶의 긍지를 일깨우는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의 얼굴들과 함께 행하는 유희가 그 어느 예술적 퍼포먼스보다 효과적으로 보였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현실 문제뿐만 아니라 예술, 그리고 삶과 인생에 대해 그리 어렵지 않게 두루 다루고 있었는데, 전시회나 회랑에 갇힌 예술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그리고 즐거움/유희와 적재적소의 적절함이 공존하는 예술 방법론에 어느 정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은 정적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속의 실제 살아가는 얼굴들로 만들어지고, 그 생동감은 시간을 넘어서고 때로는 장소적 문화적 굴레도 초월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진에 담긴 순간의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에 단 하루만에 쓸려 내려가는 해안가에 떨어진 벙커 벽의 사진 마냥) 사진을 보는 순간은 일시적이지만, 50년 전 촬영된 사진이 시간적 격차를 넘어서 현재의 이를 보는 사람에 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파도에/시간에 소멸 또한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사진은 그것이 예술 또는 유희의 수단으로 꽤 유용하게 활용되었는데, 그 '얼굴들'을 담는 사진은 가볍고 직관적으로 촬영되었는데 흔히 알고 있던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잘 찍은/힌 사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카메라 또한 이동용 트럭에 실려져서 예전 지하철 역 등에서 보던 즉석 사진기처럼 보였고, 큰 흑백 이미지로 프리팅 될 뿐이었다.(더구나 벽면 등에 부착하기 위해서는 그 얼굴들 사진을 가위로 오리고 풀칠을 해서 붙여야 했다) 그리고 JR(젊은 사진작가)이 초상들을 촬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카메라는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로 큰 고민 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진이 기술적으로 잘 찍은 사진 여부와 상관없이) 사진이 적절한 공간(마을들의 건물 외벽이나 급수탑, 탱크로리, 컨테이너 박스, 해변으로 굴러 떨어진 벙크 등등)에  부착되었을 때, 무엇보다 "좋은 사진"으로 완성되는 기염(氣焰)?을 경험하게 되었다.

 

 

- '좋은 사진'의 정의

 

좋은 사진이란 정의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며 때로는 상황에 맞는 개별성을 가지고 특정되기도 하며 저마다의 가치 판단의 문제이므로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고, 그래서 그 정의는 모호하고 어색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잘 찍은 사진’이 기술적인 ‘사진술’의 의미였다면 ‘좋은 사진’은 사진의 주제와 관련된 사진 본질에 대한 이야기나 평가가 아닐까! 좋다는 의미에는 심미적 선호뿐만 아니라 동 시대의 정신적 가치나 믿음, 개인적 신념에 부합한다는 의미 등등의 다채로운 감상의 복합일 것이고,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나 일반적인 평가 또한 시대를 거치며 변화하는 것이며, 사회 전반의 믿음이나 신념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감안하면 영원불변의 기준이나 정의는 쉽지 않은 듯하다. 

'좋은 사진'은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사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일응 수긍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일반화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예술 사진, 또는 광고 등의 상업 사진처럼 대중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하는 많은 사진은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전제로 하여 제작되고,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사진의 경우에는 좋은 사진이라는 그럴싸한 정의가 될 테지만, 내밀하고 비밀스러우면 공개나 공감과는 거리가 먼, 개인 사진 등이라면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런 개인 사진이 공감이 없으므로 좋은 사진이 아니라고만 할 수는 없지 싶다. 특히 상업용이 아니라 예술과 새로운 창조를 지향한다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감에 기반한 예술들은 대부분 주류의 흐름만 답습할 뿐 새로움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방해가 될 뿐이지 않던가. 사회관계에서 공감과 소통은 몹시 중요하지만, (집단 지성을 믿지만 전적으로 옳다는 것을 맹신하지는 않는 것처럼) 창조나 예술에서 대중의 공감을 전제로 한 보편성은 고리타분한 현실 안주를 야기하지 싶다.

사진의 장르나 목적, 쓰임에 따라 좋은 사진의 덕목은 제 각각일테니 이를 한마디의 말로 정의하는 시도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좋은 사진은 “XX 한 사진이다”라고 굳이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보이는 것이고 보고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고 좋은 사진을 꾸미거나 설명하는 말 없이도 충분히 좋아 보였던 것 같다. 굳이 이를 다시 말이나 글로 좋은 사진을 정의하는 것은 번거롭고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좋은 사진은 무한한 가능성이니 정형화된 틀과 미흡한 지레짐작으로 제단 할 이유는 없다. 파괴나 폐허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 때로는 파괴적이고 혼란한 사진도 좋은 사진일 수 있지 싶다.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의 중점에 따라 좋은 사진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때로는 다수의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추앙받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불리겠지만, 이 또한 영원불변한 것은 아닐 테다. 때로는 자신만이 좋은 사진에 대한 비밀도 간직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재미있겠다.

사진 잘 찍기는 결코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 동안 잘 찍는 것에 편중되었던 관심을 이제는 좋은 사진을 찾는데 노력해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사진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해 보게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고 그리고 능력 밖의 수준이며, 사실 간절히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만의 좋은 사진 그 편협하고 속될지라도 흔들림 없고 명료한 실마리라도 찾고, 실체의 사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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