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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s of the world/Canon

Canon Demi EE28 / 구형 수동 카메라! 자초한 수고스러움과 불편을 즐기는 얄궂은 마음

 

최근 다시 필름으로 사진을 좀 찍어볼 생각으로 십여 년 넘게 관심도 두질 않았던 필름 카메라를 다시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이 심리가 참 묘하다. 그동안 수동 렌즈들을 디지털 미러리스에 이종 장착하고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런 디지털 미러리스를 활용한 '이종교배'와 올드 카메라의 사용 느낌은 꽤 차이가 크다. 최신의 디지털 바디와 올드 수동 렌즈의 조합은 사실 자동초점 기능만을 배제하였고 대부분의 카메라 첨단 기능 즉, 자동 측광이나 넓은 감도(ISO) 설정, 오토 화이트 밸런스, 디지털 이미징 프로세스의 각종 기능, 필요에 따라서는 프로그램을 통한 후보정까지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포커싱의 불편도 라이브 뷰나 확대 기능, 피킹 기능 등의 편리한 기능을 활용하고 있었으니, 디지털의 편리함에 기대어 디지털의 편리함과 뒤섞인 반쪽짜리 복고풍의 추척 보정 감성을 즐기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올드 카메라의 사용은 이와는 꽤 차이가 있고, 불편하다. 필름 사용의 번거로움이나 수고스러움은 차치하고, 특히나 카메라를 자동 기능이 턱없이 부족한 60년대 전후의 수동 카메라를 사용한다면 이는 사서 고생을 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이런 불편과 번거로움 그리고 수고스러운 조작에도 즐거움을 찾는 행태를 보면 이 무슨 마조히즘의 변형된 취향의 발현인가 싶다.

 

Canon demi EE28, Fujicolor auto 200

 

 

사실, 최근의 카메라의 자동 기능들은 참 놀랍다. 편하고 쾌적하다. 그런데 이런 놀랍고 편하고 쾌적한 기술이 있음에도 이를 십분 활용 못하는 허술한 사진술 탓에 결과물에서는 항상 부족함이 묻어나니 사진을 찍는 즐거움도 잦아든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잊히거나 사라지고,  단지 카메라를 나르고 적절한 곳에 거치하고 때에 맞춰 셔터를 눌렀을 뿐, 카메라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잘 뽑아주니 편하지만, 한편으론 심심하고 허전한, 분명 내가 차린 밥상인데 어느 순간 숟가락만 올린 느낌이다. 물감을 캔버스에 대충 뿌리는 것만으로 좋은 그림이 그려진다면 이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그림 그리는 의미나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비록 잘 그려지진 못해도 자신이 '한붓 한붓?' 그린 그림이 스스로에겐 더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명품도 좋겠지만, 골방에서 스스로 바늘에 수차례 찔려가며 만든 허섭한 자신의 바느질 작품이 때로는 더 의미 있게 느껴질 때도 있을 테다. 명품이 흔해도 너무 흔한 세상이니 말이다.

 

 

 

 

올드 카메라로 찍혀진 사진의 대부분은 노출이 문제 있거나 초점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듯이 노출만 맞았다면 멋졌을 텐데, 초점이 아쉽게 안 맞았군 등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사진 한 장 한 장에 풍성해지는 이야깃거리가 더 솔깃하고 흥미롭다. 나에게 사진은 업도 아니며 단지 취미일 뿐, 사진으로 얻는 것은 순간의 추억과 그것에 얽힌 이야기와 그 속에서의 즐거움일 테니, 좀 못나고 덜떨어져도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자초한 수고스러움과 불편이 있지만 그로 인해 풍성해지는 사진' 이야기를 쫓아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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