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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잉여 Record

'정의란 무엇인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우리는 정의의 편이기를 바라고 희망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동화책이나 위인전, 어린이용 만화영화에서도 언제나 주인공(정의의 용사)은 정의를 위해 악의 세력과 싸웠다. 그것이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든지 SF와 촌스러운 시대상이 혼합된 세기말적 아방가르드 한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 영화든지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불문하고 항상 그랬다. "똘이장군" 조차 정의의 주먹을 앞세워 붉은 돼지를 통쾌하게 때려잡았다.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의는 좋은 것이며 우리 편이었던 거 같다. 아니 우리 편이 아니면 정의가 아녔을 것이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 정의인가!"

 

 

 

 그리고 5 공화국 대머리 대통령 시절에는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캐치프레이즈/슬로건?)를 세뇌될 정도로 들었어야 했다. 그들의 실체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게 당명조차 민주'정의'당이었다. 그 시절 내 주변에는 항상 정의라는 말이 넘쳐났지만, 정의 없는 사회에 정의라는 구호만 넘쳐나는 아이러니한 시기였다.

 

 

 정의의 용사를 꿈꾸던 어린 시절은 입시 공부와 젊은 날의 유희 속에 파묻혀 잊혔고, 사회의 각박한 삶에 찌들게 된 이후에는 경제적 효용과 가치라는 새로운 잣대로 좁은 자신의 세상을 재단하고 살았다. 세상은 돈과 경제가 지배하는 것으로 보였고, 모두들 그리 사는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그 속에서 그런 사고로 살아야 하는 줄로 믿었다. 그렇게 '정의'는 주변에서 사라졌고, 굳이 떠올리자면 빨간 돼지 때려잡으러 북으로 간 똘이장군의 '왕 주먹'과 우주에서 나타난 괴기한 로봇을 날려버리던 마징가 제트의 '로켓 펀치'쯤으로 기억에 남았다. '정의'를 떠올리지 않고도 살아지는 세상이었던 것 같다. 아니 '정의'를 떠올리지 않을수록 더 잘 사는 사회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거나 무자비하게 권력을 탐하여 그것을 쟁취한 놈이 장땡인 세상이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우리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 경제라는 허울을 쓴 배금주의(황금만능)와 경쟁논리로 치장된 약육강식의 생태계 법칙이 뒤범벅이 되어 참으로 요지경에 뒤죽박죽 엉망, 개판 오 분 전에 우리 이웃과 친구, 형제들이 죽어나가는 무자비한 사회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도대체 왜,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되었을까 하고 한탄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타락하고 망가진 것일까? 도대체 무얼 잘못한 것인가?

 

 곰곰이 나 자신을 이해시킬 이유를 찾다 보니 이 꼴을 야기한 가장 큰 원인은 잃어버린, 아니 외면하고 버려두었던 '정의'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정의'는 청소년 시절의 수준에서 성장을 멈춰 미숙하고, 오랜 기간의 무단 방치로 인해 야위고 허약하다. 그 정의에 다시 생명과 건강을 되찾아주고, 뒤늦은 성장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뭘 하고 산 걸까?  도대체 우리 사회에, 그리고 나의 그간 삶에 정의란 있기나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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